문규현 신부의 파북파장이 국가적으로 뿐 아니라 한국천주교회내부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문 신부의 파북을 발표하자 한국주교단은 『유감』의 듯을 표명했고 그 후 한국평협회장단 회의는 주교단의 입장을 전폭 지지한다는 호소를 발표함으로써 주교단, 정의구현 사제단 그리고 한국평협이 서로 엇갈린 견해를 보임으로써 마치 한국천주교회가 분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외부의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교단과 한국평협은 사태를 관망하거나 혹은 신중을 기하는 측면에서 또 다른 태도표명이나 행동을 유보하고 있는 가운데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8월 4일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낸 질의서를 비롯 8월 7일 청량리성당에서의 시국기도회를 선두로 노 대통령의 회신마감일인 15일까지 전국을 순회하며 9일기도회를 열고 그 회신의 내용에 따라 다음 단계의 행동을 취할 것임을 이미 예고 해놓고 있다.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주교단이나 한국평협의 입장과는 달리 문 신부의 파북을 계기로 「단체행동」을 표방한 것은 사제3명의 구속과 정부의 7.7선언 후속조치의 부재 그리고 국가보안법의 개폐 및 민족의 통일논의 등 현안문제들에 대해 사제들이 대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풀이된다.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이러한 견해와 이에 따른 행동양식의 결정에 대해서는 현시점에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서 먼저 생각해야할 일들이 있다.
그것은 우선 주교단의 태도문제이다. 주교단은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을 정식 인준한 사실이 없다는 이유로 그 사제들의 행동을 언제까지 수수방관만 하고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과거 정의구현사제단이 대사회참여 활동에서 다소의 문제점도 없지 않았으나 많은 면에서 교회와 사회의 찬사와 인정을 받을만한 일들을 해온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주교회의 과거처럼 사제단의행동을 묵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또 하나는 정의구현사제단의 행동에 대해『유감』을 표명한 것 이외 그 사제들을 교회의 교도권 안으로 수용, 교회의 사회참여를 일관성 있게 전개해나갈 계획이나 방침이 설정돼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점은 주교회의가 의결기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협의체로서 주교회의의 결정이나 태도표명이 사제들의 양심적인판단이나 그에 따른 어떤 행위도 제재할 아무런 법적인 구속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제단의 논리와 한국 평협측의 상반된 견해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점이 되고 있다. 주교회의의 결정이나 태도표명이 정의구현사제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애초부터 아무런 언급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주교회의가 문 신부의 파북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았더라면 한국평협과 정의구현사제단간 현재 대립과 불일치의 상황을 초래하지 않았을 런지도 모른다.
문제는 지금 이 상황에서 2백50만 한국 천주교신자들이 과연 어느 편의 입장을 따라가야 하는 것인지 정확한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들 역시 『각자의 양심과 판단에 따라』주교회의의 입장이든 정의구현사제단의 입장이든 원하는 대로 따라가라고 내버려둔다면 한국교회는 과연 어디로 떠내려 갈 것인가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요소들이 주교, 신부, 평신도들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분열되거나 흩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에 현재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움직임과 한국평협의 움직임이 조화와 일치와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이일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분들이 바로 한국교회의 최고책임자들인 주교님들임을 거듭 확인하면서 주교님들의 현명하고 신속한 방향설정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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