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라 오시오 내가 당신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소 하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마내오 4장 19절)
이 성경 말씀대로 예수님을 따라나선 새 사제가 한국에 17명 새로 탄생했다. 할 일은 많으나 일꾼이 적은 한국 교회에 17명이란 새 사제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새 사제들을 충심으로 환영하며 이런 훌륭한 일꾼들을 주신 하느님께 특별한 감사와 영광을 드린다.
우리 교회 사제단은 방인 사제만도 5백60명 정도인데 새로 17명 젊은 일꾼들이 생김으로써 우리는 새 힘을 얻은 것이다. 우리는 새 사제들을 환영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해 보고 싶다. 사회는 빨리 발전하고 교세도 확장되어 가는 이때에 그들은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웠겠고 또한 시대감각에도 기성세대들보다는 더욱 더 예민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현대처럼 사회 발전의 속도가 빠른 때에는 해마다 다른 질의 사제들이 양성되어 나오리라 믿기에 그들에게 좀 더 많은 기대를 걸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옛날 배운 것으로 사목이나 수덕에 충분하였으나 오늘에 와서는 옛날 가르쳐 준 것으로는 충분하다 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제이차「바티칸」공의회를 계기로 하여 교회 내에서도 질적으로 양적으로 많은 비약적 발전이 있었다. 물론 교회의 본질에야 아무런 변화도 있을 수 없지만 밖으로 나타나는 외양면이나 실천면에 있어서는 너무나 빨리 또한 너무나 많이 변하였기 때문에 한때는 혼란과 만등의 시련도 겪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큰 혼란과 갈등의 시련도 극복하였고 안정을 되찾는 시기가 되었은즉 이번에 새로 서품된 사제들에게 새로운 기대를 걸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교회 사제단은 양적으로 확장되었음만을 기뻐할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충실해지기를 바라마지않는다. 현대는 능율이나 합리화의 시대이다. 종교자체는 능률이나 합리화의 대상이 될 수 없으나 합리화도 한 번쯤은 적용시켜 보고 싶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교회 지연은 너무나 많은 비중이 전통이나 관습에 사로잡혀 이 상태를 완전 무결하게 유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흔히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감각에 예민한 새 사제활동 등에 새 사조들 도입하여 교회 운영이나 사목활동 등을 현대화했으면 한다. 물론 이런 일들을 처음 시작하기 위하여서는 많은 난관들이 있으리란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얼핏 잘못하면 기성세대와의 사소한 오해로 크게 빗나가기 쉽다든가 또는 마땅히 표시해야 할 존경이나 겸손을 결한다든가 또는 너무나 맥돌적이라는 평을 받을 수 있는 위험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기를 『사제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라』고들 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극언하기를 어떤 류의 사제들은 차라리 사제가 되지 않았던들 더욱 좋았을 것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즉 이런 불행한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서는 먼저 겸손할 줄 아는 사제가 되어 달라는 것이다.
사제가 되면 흔히는 과분한 존경을 받으므로 자신이 갑자기 뭣이나 된 듯하여 자신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풍조도 없지 않았고 심지어는 얀세니즘(JANSENISMUS)의 영향으로 이런 일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했던 일도 없지는 않았다. 따라서 사제는 목자 본연의 자세인 주의 종임을 잊지 말고 종은 주인을 섬기기 위하여 즉 봉사하기 위하여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제는 사제직을 받을 때에 자기 주교님께 존경을 바치며 복종하고 맡겨진 신자들을 잘 돌보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런즉 사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부르심에(聖召) 임한 사람들로서 하느님을 위해 품을 받은 것이지 자기 자신을 위해 사제가 된 것은 결코 아니다 (요한 15장 16절). 따라서 하느님의 뜻을 펴는 한낱 연장으로서의 역할 즉 인류구원,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불족이 있어서는 안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자기 자신은 없는 것처럼 하고 오직 하느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봉사해야 할 것이다. 즉 자신의 이익보다는 교회의 이익을 위하여 일해야 할 것이지 안 그렇다면 제사에는 생각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는 위선자가 될 위험이 있으며 심지어는『그런 사람은 차라리 세상에 나지 않았더면 더욱 좋을 뻔했습니다』(마태오 26장 24절)라는 슬픈 일이 생기지 않을지도 모르겠기에 이런 노파심에서 공연한 념원을 해 보는 것이다.
젊은 사제들, 그들은 높은 이상과 불타는 혈기에 가득 차 있으리라. 그 젊음을 한 번 하느님을 위하여 아낌없이 불태워라. 그리하여 자기 모든 능력을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새 출발을 하는 새 사제들에게 너무나 부담 많은 잔소리를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운 일들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한 가지 원칙이면 충분하리라 믿는다. 즉『너희는 뱀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 같이 순박하라』이 말씀대로 실천한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문제 없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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