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들어간 방은 「3사 25실」 13.8평의 좁은 방엔 나 같은 소년 수가 8명이나 지그자그형으로 누워서 물끄러미 쳐다보았지만 살기를 띤 눈초리였습니다.
감방장의 명령에 따라 변기통 옆에 누웠습니다. 탑탑한 공기와 담배연기 냄새가 나의 코로 들어와 잠을 잘수 없었습니다.
이튿날까지 이와 빈대속에서 싸우다 기상나팔 소리를 들음과 동시 점검이 끝나고 세면장에 나가서 소년원에서 같이 있던 친구들과 만났습니다.
그 애들은 이곳이 처음이 아니라 전부 감방장 노릇을 했습니다. 난 그 애들의 덕분으로 남다른 대우를 받았습니다.
잘나지도 못한 인간이지만 소년원서 잘나갔다는 경력으로 내방 감방장도 괄세를 못했습니다.
똑같은 나이에 오밀조밀하게 모여서 잡담과 박자 들리는 유행가를 부르는 소리, 식기닦는 소리, 싸우는 소리, 정말 정신이 없을 정도로 시끄러운 곳이 소년수 감방이었습니다.
아무리 담당교도관이 제지를 해도 막무가내인데다 그들 전부가 허탈한 마음속에 인생의 반항기에 접어들어 누가 말리지도 못했습니다. 취침시간이 되었습니다. 야근 교도관이 문앞에서 앉아있습니다. 메아리(거울)을 식구통으로 내고 교도관의 일거일등을 살피다 소리를 지릅니다.
『담당 오무라이스 폐통』
그 소리와 함께 폐통(신호목)이 떨어졌다가 다시 원위치로 돌아옵니다. 그럼 담당은 급히 올라옵니다.
그런 다음은 또 저 밑에 방에서 「달동(부산 완원동)폐통」하고 소리 지릅니다. 그럼 25개방에서 약속이나 한듯이 모조리 폐통이 떨어집니다.
이쯤되면 교도관은 정신을 못차리고 급히 비상벨을 누릅니다. 보안관에 연락이 갈때쯤 되면 폐통은 기술적으로 올라가 원위치로 돌아갑니다.
신호를 받고 달려온 부장과 교도관은 조용한 감방을 보고 장난인줄 알고 다시 돌아갑니다.
이렇게해서 교도관을 골탕먹이고 그곳에서 작은 마음의 통쾌감을 느끼고 모든 사회와 자유를 잃은 교도소 안에서까지 반항을 하게 되는 우리들죄수.
모든 사회를 우습게 생각하고 또 좁게 생각하기에 온 세상이 자기를 위해 있다고 착각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빈곤해서 아니면 가정불화로 친구를 잘못 사귀어, 그 외엔 자신의 과대망상증에 걸려서 범죄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10대의 반항아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이틀이 지난 오후, 공범들이 면회를 왔습니다. 여러가지 위로의 말과 빵 봉지와 영치금을 넣어주고 갔습니다. 나는 그곳 생활 역시 편했습니다.
3일에 한번씩 2천원씩 넣고 가기 때문에 보리밥은 배고픈 아이에게 주고 나는 그 안의 식당에서 파는 사식과 매점에서 파는 빵과 과자로 식사했습니다. 나는 그 당시 밖에있는 것보다 마음 편했습니다. 비록 제한된 13.8평의 좁은 방안이지만 책을 보고 또 바둑을 두고 이것도 싫증이 나면 작난으로 보냈습니다.
그 후 한달이 넘어서 법정에 사건 심리하러 갔습니다. 구치소에서 법정으로 가는 길엔 가족들이 저마다 자기 가족을 찾으려고 눈이 회전을 빨리했습니다.
공범들이 와 있었습니다. 안심하라는 표정이었습니다. 난 많이 속았기 때문에 안 믿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엔 미련이 남아 믿기로 했습니다.
차례대로 사건 심리후 검사의 논고와 구형이 내려졌습니다. 사무적인 나의 심리가 끝나고 검사의 논고와 나의 구형이 내려졌습니다. 단 18개월에서 장기 1년.
구형을 받고 돌아오니 마음이 자꾸 불안했습니다. 이튿날 찾아온 공범들은 소년원에 보내기로 약속해 놓았다고 하지만 마음이 안놓였습니다.
『징역 받으면 이번엔 전과도 붙고 소년교도소로 가는데… 그곳엔 규율이 세다고들 하던데… 징역 받으면 죽어버려야지』
나는 마음이 초조해지고 이상한 생각이 자꾸 떠올라 왔습니다.
수갑을 차고 그 위에 포승을 엮어서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법원에 내리니 가랑비가 내렸습니다. 법정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공범들이 와 있고 일이 잘됐다고 안심하라고 눈짓을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불안하고 떨리었습니다.
모두 일어났다가 판사가 들어와 앉은후 우리도 따라 앉았습니다. 성인 죄수들의 공판부터 시작됐습니다.
징역받는 사람, 또는 집행유예 받는 사람, 모두 얼굴색이 달라졌습니다.
5명의 소년수가 판사앞에 섰습니다.
나도 그 중에 끼었지만 징역받는 기분같이 불안해 졌습니다.
『…아무개는 한번도 아닌고, 참작할 사유가 없어서 징역 단기 1년에 장기 1년6개월을 주니 이번엔 개과천선해서 나오도록…
다음 김 아무개 박 아무개 너희들은 나이도 어리고 첫 범행이고 우발적인 사건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소년부 지원에 송치한다.
다음 이 아무개는 연기하고 다음 곽상봉 피고는 소년원에도 여러 번 들어갔지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니 새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게. 징역 8월에 처한다. 구급일수중 45일을 본 형에 삽입하고 이 형의 확정일로부터 2년간 집행유예한다』
나는 멍멍해졌습니다. 나가는것만은 확실했습니다. 버스에 올라탄 후에도 내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범죄후 나가본 일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그런지 마음이 들떠 있었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니 징역받은 사람과 나가는 사람이 표가 났습니다. 우는 사람 또 말 없이 괴로워하는 사람 내보내주지 않는다고 분개하는 이 모두 정해진 운명속에서의 힘없는 반항이었습니다.
나가는 사람들은 기쁨에 들떠있었습니다.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슬픔과 기쁨이 잘조화되는 곳은 법정 아니곤 볼수없을 것 같았습니다.
교도소에 돌아온 나는 일단 방에 들어갔습니다. 집행유예로 나간다고 하니 전부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소지품을 면회 안오는 사람들에게 전부 갈라주었습니다.
저녁식사후 우리방엔 내가 나간다고 섭섭하게 생각했지만 붙들고 나가지 말라 하고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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