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문 신부 파북과 주교단의 유감표명、그리고 한국 평협회장단의 주교단입장 전폭지지 등으로 한국천주교회 내부에는 일단 불협화음과 불일치가 내재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주교단과 사제단、그리고 한국 평협 삼자 간의 이 같은 입장과 상호관계를 두고 교회안팎에서는 『한국천주교회가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항명이다』『항명이 아니라 견해차이다』등의 갖가지 주장과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일반 평신도들은 과연 어느 길을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명확히 판단하지 못하고 있고 교회일각에서는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삼자간의 불일치가 계속된다면 교회자체와 신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줄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는 교회의 권위와 이미지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실상을 냉철히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한국교회 진로를 확고히 정립하지 않으면 안 될 「위기적 상황」에 처해있음을 먼저 인식해야하겠다.
먼저 평신도들의 상황을 살펴보다. 과연 평신도들은 주교단과 한국 평협의 입장을 수용、지지하며 하나로 일치돼 있는가? 대답은 물론 그렇지 않다. 말없는 대다수 평신도들이 주교단과 평협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 하더라도 그렇지 않은 평신도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주교단의 정식승인을 얻지 못한 채「천주교」명칭을 붙여 활동하고 있는 10여개의 사회운동단체 소속 평신도들이나 또 이번 문 신부 파북과 그에 따른 정의구현사제단의 입장에 동조하는 평신도들은 일단 주교단과 평협의 입장과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평신도들 중에 주교단과 평협과는 상반되는 듯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주교단과 사제단에 그 원인과 책임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교계제도상의 가톨릭교회는 근본적으로 주교와 그의 보조자들인 사제들에 의해 운영돼오기 때문이다. 곧 주교나 신부들의 뒷받침 없이 오늘날 한국평신도들이 진행될 수 있느냐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오늘날 평신도들이 시국문제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 근본원인은 주교단과 사제단의 시국관이 주교 개개인、사제 개개인 서로 다르다는데 있다 할 것이다.
주교단을 실례도 들어보면 주교회의에서 시국문제에 대해 담화나 성명을 발표해도 모든 주교가 그 내용을 찬성하고 따른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주교회의 자체가 의결기구가 아니라 협의체이기에 주교회의의 결정을 따르고 안 따르고는 각 교구장의 자유의사에 달린 문제이다. 그러기에 주교단명의로 시국담화가 발표되었다 하더라도 보수ㆍ중도ㆍ진보의 상향을 가진 주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고 또 실지로 그런 사례를 경험해오고 있다.
사제들 역시 시국문제에 대해 각기 견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사제들의 시국관은 소속 교구장주교의 입장과도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한 가지 공통적이 현상은 대개 연령층에 따라 보수ㆍ중도ㆍ진보 등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정의구현 사제단에 대해 잠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사제단은 1974년 7월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정부당국에 불법구속 당했을 때 대정부투쟁을 벌이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사제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모여 생겨나게 됐다.
이렇게 출범된 정의구현사제단은 지난 15년 동안 교회의 사회정의와 인권문제 그리고 민주화 등을 위해 과감하고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교회와 사회로부터 폭넓은 지지와 인정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또 한편으로 정의구현사제단을 지난 대통령 선거 때 특정당의 후보를 공개지지 하거나 이번의 문 신부 파북과 추인 등으로 교회내외로부터 강한 비판과 의혹을 사기도 했다.
여하튼 현시점에서 주교들과 사제들 그리고 평신도들 간 엄연히 존재하는 시국에 대한 시각 및 견해차를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여기서 먼저 두 가지 조건을 전제하고 나름대로인 해결방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전제조건은 신앙과 교리문제에 대해서는 교도권에 무조건 순종한다는 조건이며、두 번째는 교회의 기본사명이 복음선포ㆍ인간구원ㆍ세상복음화로서 이 사명을 수행하는 데는 교회법과 교도권이 규정하지 않고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시각과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조건이다.
이 두 가지 전제하에 첫째로 교회 안에 시국문제를 놓고 주교ㆍ신부ㆍ평신도간 서로 다른 의견이 언제나 존재할 수 있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이를 시인한다면 서로간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하고 자기편의 의견만이 옳다고 주장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이들 삼자간의 서로 다른 견해는 「다양성 안의 일치」란 대원칙 하에 그 결과가 종합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간의 견해 차이를 「항명」으로 단정하거나 불온시하지말자는 얘기다
둘째는 정의구현 사제단을 비롯 주교회의가 정식승인하지 않고 있는 교회내 단체들에 대해 쌍방이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가능한 한 모든 비공인단체들이 교회단체로 떳떳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특별히 유의해야할 것은 교회단체들이 여하한 상황에서도 교회의 정신과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아야하고 또 어떠한 외부세력의 간섭이나 개입도 받아서는 안 되겠다는 점이다.
셋째는 교회가 시국문제에 적기적법(適期適法)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교ㆍ신부ㆍ평신도가 포함되는 각계 전문가들로 기존기구를 보강하거나 새로운 기구를 조직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로 한국교회는 분열과 불일치의 모습으로 세상에 비쳤다.
물론 이런 일도 한국교회가 분열되거나 일치가 흔들릴 까닭은 전혀 없다. 그러나 모두가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세상이 아무리 바뀌더라도 교회의 위계질서와 서로 다른 직분은 존중되고 상호 보완됨으로써 「구원의 보편적 성사」로서의 일치된 교회모습을 항상 간직해야하겠다는 것이다. 교회가 일치를 잃으면 「인류구원」의 대명제는「요란한 꽹과리」에 그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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