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나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방 한칸을 주인에게 덜컥 양보하고 왔다. 평소 아내에게는 기본 예의도 지키지 않았으면서 남에게는 어찌 그토록 「석가모니」란 말인가. 방 두칸에 부엌 1칸 몫으로 비싼 전세값을 치뤘건만、하루아침에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생활은 불편의 연속이었다.
나는 내심 매사를 자기 멋대로 하는 딸 대모의 처사가 괘씸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금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친정 부모님께서 와주셨다. 비록 하룻밤도 못 주무시고 하향하셨지만 친정 부모님 덕에 그날에야 비로소 「전세 계약서」를 받아냈다.
나는 이제서야 고백하지만、남의 셋방살이를 한다해서 당연히 집안청소하고、손님 올 때는 설거지까지 해드린 것이 아니다. 대모 글라라는 수녀원서 환속한지 얼마 안 된 몸이라 생활이 서툴렀고、글라라의 어머니 또한 부업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이를 감안、화장실 휴지까지 부지런히 비웠던 것이다.
그라나、나는 나의 이러한 배려와는 달리 이들에게서 73권의 성서와 성모마리아께 바치는 장미 한 송이 외에는 감동을 받지 못했다.
제5처:동생 루시아가 나를 도우다.
유난이 햇볕이 따사롭게 나를 유혹하던 날이었다. 장롱을 열어 이불을 거풍시키고 서랍 속을 정리하던 중 눈에 뜨인 손뜨게질(응접세트 덮게 등등)을 보고 깊은 상념에 젖었다. 그것들은 동생 루시아가 결혼선물로 준 것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만지작거리다 끝내 방바닥에 엎드리고 말았다.
『하느님、제발 독채전세라도 마련해 주세요』하고 울고 있는데 응답처럼 루시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독채전세가 하나 있는데 할래? 형부한테 의논해서 연락해줘』
시외 전화를 끊고 퇴근한 남편에게 『고우니 아빠 역곡에 독채 전세가 있대요. 값도 싸요』『그렇게 싼 것을 보니 헐었을 것이 뻔하구만』『남의 내 집보다 헌 내 집이 낫다고 좀 헐었으면 어때요. 독채라는데 감사할 뿐이지 … 』 그러나 남편은 빈정거렸고、무엇보다도 주인의 반대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다. 1년 기간도 못 채우고 나간다고 펄쩍뛰었다. 이로 인해 여러 날이 「지옥」그 자체였다. 그러던 중 1984년 9월 2일이라는 행운의 날이 왔다. 나에게도 …
전날 밤까지 태풍주의보와 폭우로 하늘이 무섭게 울더니만 심술궂은 먹구름도 나의 근심도 바람이 모두 실어갔다. 내가 무슨 대접받을 일을 했다고 하느님은 나에게 「천국」을 허락하사 오직 꿈만 같은 구월 둘쨋날을 마련하셨더란 말인가! 지금도 가끔 가슴 설레이던 그날을 기억하고 한다.
제6처:막내 며느리 시아버지 눈물을 닦아주다.
「천국」은 참으로 「천국」이었다. (네 번째로 이사한 집) 옥상에다가 산에서 흙을 파 옮겨 호박 두 그루를 심었다. 어느새 줄기가 뻗고、잎이 무성터니 노오란 꽃을 피워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호박에 매달려 있던 열매 세 개가 신기함을 더해주었다. 이웃집 아낙들을 불러 이 호박으로 호박전 파티를 열어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 또 여름밤이면 이웃한 열두 가구가 모여 삼겹살에 소주、과일에 맥주를 마시고、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수박을 잘들 먹었다. 때때로 미연 엄마는 커피、정선 엄마는 비빔국수、정아 엄마는 떡과 밥、정규 엄마는 시장어귀에서 만두를、나는 돌잔치、또는 제사음식을 그들과 나누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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