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피서 안가는 게 더 좋은 피서방법」이란 말이 유행이다. 피서랍시고 해수욕장이다 계곡이다 가봤자、너도나도 몰고 나온 차량들로 초만원이고 사람 투성이고、숙식할만한 곳 찾기란、예약을 해놓지 않았을 경우엔 여간 힘들지가 않다. 게다가 가고오고 하는 동안의 길에다 버리는 시간과 그로부터 오는 짜증이라니. 시골생활의 불편함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피서 안가는 게 더 훌륭한 피서란 말이 나도는가 보다.
다들 차들을 갖고 이 도시를 빠져나간 서울의 8월 초순은 참으로 한산하고 쾌적하다. 한차례의 큰비와 태풍이 여파는 서울하늘을 더 없이 맑게 만들어 놓았다. 복작대던 거리는 많이 성겨졌고、큰길의 차들도 반 이상이 줄어든 것 같다. 러시아워 때 그렇게 밀리던 네거리 같은 곳에도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의 장사진은 거의 없다.
내가 사는 구파발에서 광화문까지 나오는데 평소엔 30분에서 40분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20분이면 충분하다. 어떤 땐 시속 90km를 놓고 달려도 앞차를 만나지 못하는 경우까지 있는 것이다. 퇴근길도 마찬가지여서 국립중앙박물관 앞에서 좌회전 신호를 대기하는、전날의 그 막대한 차량의 폭주도 없어 여간 신기하지 않다. 회사의 사무실은 에어컨이 있어 무더위에 벗어나 있고、밖으로 나다니지만 않는다면 하루하루가 여름과 무관하다. 이런 일상 속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않다면、피서지치고는 더 이상 좋은 곳이 없다. 돈쓰고 고생하고、짜증스런 시간 속에 왜 몸을 담궈야 하는가하는 느긋한 마음도 있다
얼마 전엔 아내와 아이 둘을 싣고 다일로 포천의 백운산엘 다녀왔다. 나의 휴가는 그런 식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는데、규정된 휴가일수를、그 나머지는 추석 훨씬 앞두고 시골을 다녀오는 걸로 소모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였다. 백운산 계곡역시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손수 운전차들도 장사진이고、심지어 관광버스까지 동원돼 길 한쪽을 메워놓고 있었다. 그늘진 곳이면 그런 곳마다 자리들을 만들어 놓고 호객을 하고 있었으며 곳곳에서「잔치」들을 벌이고 더러는 대낮부터 술이 취해 고성방가에다 춤까지 추고 있었다. 오후 늦게 서울로 들어왔는데 의정부에서 차에 막혀 한 시간 가까이 차속에서 기다려야 했다. 한마디로 짜증스럽기 짝이 없는 하루 휴가여행이였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을 일요일까지 합해 나흘 동안의 휴가를 집에서만 보냈다고 했다. 선풍기 틀어놓고 냉장고에 넣어둔 수박이나 가끔씩 꺼내먹으면서 근처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온 필름을 거의 20여 편이나 봤다는 것이다.
햇볕이 그리우면 밖에 나가면 됐고 더우면 집안으로 들어와 찬물에 샤워하고 낮잠도 잘 만큼 잤다고 했다.
「아이들 성화 때문에 … 」피서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남이 가니까 남들이 가족들을 자가용차에 싣고 히히덕거리면서 떠나니까、질세라 나도 떠나는 그런 피서여행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서울에 남은 사람들은 상쾌한 또 다른 피서를 즐길수 있다. 한적한 거리、신나는 시내 주행. 길에다 바닷가에다 뿌리는 돈의 절반만으로도 편안하게 안락하고 쾌적하게 며칠을 보내는 「피서 안가는 더 훌륭한 피서방법」이 있다는 걸 기억해두기로 하자.
유럽에서 본 그들의 피서는 그 살아가는 일상을 이해하면서부터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닭장 같은 방을 들락거리면서 사는 그들 도시 사람들에게 흙과 물과 태양과의 만남은 영양분섭취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들의 바캉스 기간은 두 달이나 된다. 이 기간 동안 떠나고 돌아오는 차들로 고속도로란 고속도로는 초만원이고、특히 바다 쪽으로 가는 길을 마치 러시아워 때의 통일로 같았었다.
그들에겐 바캉스가 필수적이지만、우리의 경우는 다르다. 습기찬 날씨와 비가 잦은 가을ㆍ겨울ㆍ봄을 지나면서 태양에의 기나긴 목마름이 있지만、우리는 사계가 뚜렷하고 모든 계절에 태양이 빛나고 있는 것이다.
거주지도 대부분이 주택이거나 아파트도 13평 이상이 아닌가?
이렇게 보면 우리에겐 바캉스의 의미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우리식의 바캉스라고 우기면 하는 수 없지만.
어쨌거나 8월 중순을 맞으면서 서서히 서울은 그 복잡한 원래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바깥으로 나갔던 차량들과 사람들이 돌아왔거나 오고 있기 때문이다. 9월이 오면 다 돌아와 있을 것이다. 서울에 차적을 둔 차가 90만대를 넘어섰다는 보도가 며칠 전에 있었다. 이 90만대의 차가 한정된 길에 나섰을 때는 끔찍한 풍경이 벌어질 것이다. 새로 급격히 늘어선 차량대수의 가담으로 전날보다 더 복잡한 길과 더 많은 사람들과、우리는 서로 서로 만나게 될 것이다. 9월이 오면 나는 8월초의 서울이 몹시 그리워 질것이다. 피서안간 더 훌륭한 피서였던 때가 …
한적한 거리, 신나는 시내주행, 바닷가에다 뿌리는 돈의 절반만으로도 편안하게 며칠을 보내는「피서 안가는 더 훌륭한 피서방법」이 있다는 걸 기억해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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