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에 따라 흥미의 대상도 달라지는 것일까? 요새는 굴뚝의 존재가 여간 흥미거리가 아니다.
겨울이 되면서부터 갑자기 자신을 강력히 주장하듯 온통 연기를 뿜으면서 솟아오르는 굴뚝들로 내 주위는 포위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어느 건물을 봐도 한결같이 굴뚝은 있기 마련이고 또 굴뚝은 그 건물보다 얼마만큼씩 높기 마련이고 보면 어떤 고층건물도 결코 굴뚝 이상으로 높을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오고 만다. 그런데 난 명동본당 옆에서 살면서도 성당 뒷뜰에 있는 굴뚝이 성당종루 못지 않게 높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무튼 언제즘 인간이 굴뚝을 발명해냈는지 알길이 없지만 굴뚝의 발명은 불의 발견만큼이나 우리 인류생활에 커다란 공헌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원시인들이 동굴 앞에서 피우던 모닥불을 방안까지 끌어들이는데 있어서 굴뚝의 발명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굴뚝을 설치한 후에야 문을 해닫을 수 있었을 것이고 추위에 노출되었던 인류의 생활을 보다 따뜻하고 안전하 지대로 옮아갈 수 있었을 것이 아니겠는가? 길고 긴 밤을 밀폐된 방안에서 마음놓고 불을 지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굴뚝의 힘에 의존한 것이요, 불을 둘러싸고 생겨난 길고긴 설화(說話)며, 자수(刺繡)며, 그림같은 예술이 모두 굴뚝의 산물이라 해도 별로 이상할 것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굴뚝은 일찍부터 우리들의 다정한 친구요 협조자였으니 인간의 생활이 있는 곳엔 굴뚝이 있기 마련이고 굴뚝이 있는 곳엔 반드시 따뜻한 정이 넘치는 인간이 모여살기 마련이다.
이 굴뚝은 그 집이 폐가가 아님을 말해주고 거기는 따스한 피가 도는 인간이 살고 있다는 상징인 것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나의「굴뚝관」도 이제 사치스러운 공상의 소산이 되고 말았다. 이제 나의 주변에선 새벽부터 검은 연기를 기선처럼 토해내는 저 많은 굴뚝은 어느 화가가 무슨 정을 가지고 화폭에 옮기고 싶겠는가 말이다. 겨울만 되면 매연과 굴뚝연기 때문에 목이 붓는 서울시민들에겐 더이상 굴뚝은 낭만일 수 없다. 인간의 협조자였던 굴뚝은 이제 무서운 적으로 변해지고 있으니 누가 저 굴뚝을 몰아낼 수 없을까?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