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학자란 일생동안 끊임없이 연구를 계속하여 자기 분야의 새로운 개척을 업적을 통해서 이룩하는 직업인이다. 학자에게는 휴식이나 중단이 있을리 없고, 돈이나 감투같은 의도에 흥미를 가져서도 아니된다. 그것은 곧 연구생활에 있어서 전심치지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에는 일견 학자가 않은것 같으나 이런 뜻에서의 진정한 학자가 적은것이 아닌가 한다.
가톨릭신자로서의 학자를 생각해보자. 여기서「신자학자」란 말을 써보려하는데 신자학자는 학계에서 존경받는 또는 높이 평가될 자질과 영향력이 문제라고 하겠다. 「외교학자」 「감투학자」 「허세학자」 「금리학자」 「추세학자」란 -실례천만의 표현이지만-후배들에게서 절대로 추종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가톨릭신자로서의 학자라면 우선 본연의 사명인 연구생활에서의 영향력과 감화력을 발휘해야 하며 책과 업적 위에서 또는 그 학자생활에서 풍겨지는 인격ㆍ사상을 가지고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것없이 전교를 하여 한명의 영세자를 얻었다고 하면 열명의 혐오파를 만든다는 것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신자학자란 본연의 사명에 화신이 되었을 경우 그것이 곧 봉사로 통하는 길이요, 그지없는 영향력을 발휘하여 가톨릭의 권위와 실가를 보여주는 것이려니 한다. 사회정화는 「겨자씨」와도 같이 신자학자가 구석구석에서 정화의 거점을 구축하는 부대가 되어야 할것이고 결코「스피커」로 거리에서 웅변을 떠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나는 A란 형을 예로 들고 싶다. 말할땐 반드시 언필칭 가톨릭을 내세우고 전교를 시도함에 처음에는 감탄했다. 그러나 뭇 사람의 뒤에 돌아가서는 좋지 않은 평을 퍼붓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것은 가톨릭을 평하는 것이 아니라 그 A의 인간성ㆍ생활태도를 들고 평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전교효과는 「제로」가 되는 것이고 나아가서 가톨릭에 「마이너스」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학자로서의 본연의 사명에 충실함으로해서 풍겨지는 영향력이 없음에 기인하는 것으로 내 나름의 판정을 내린것이다.
또 B란 형을 예로 들자. 인간성이나 인견이다 훌륭하다. 그러나 공부와 유리된 학자라고 세상은 평가하고 있는데 어떻게해서 후배들에게 존경을 받을수 있을까 하고 곁에서 보니 참으로 딱할 때가 있다.
남을 놀라게 할 업적이 계속 나와야 학계의 존경을 받으며 추종자가 늘어가는 법인데 학자로서 업적이 끊기면 만사는 끝난 것이라고 하겠다. 그것은 「퇴역학자」이며 과거장의 인물일 뿐이다.
학자가 연구실에서 거리로 나온다는 것도 일면의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전업이라고 생각된다. 흔히 공부할 수 없는 경우에 거리로 나서는 것이라고 하겠는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학문에 흥미를 가질 수 없을 경우에 또는 시대에 뒤떨어져가고 연구력이 메마를 경우가 아니고서는 진정한 학자란 거리로 나올수는 없는 것이다.
진정한 「신자학자」라면 연구실과 서재를 터전으로 하며 부단의 연구업적과 상상을 수단으로 하여 인간성과 언행을 곁들여 가톨릭신자의 고귀함을 은연중에 풍김으로써 사회봉사를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사회봉사에 필요한 자기희생의 정신을 후배들에게 불어넣어야 한다.
「겨자씨」의 실가를 연구실과 서재를 터전으로 하여 우선 주변의 후배들에게 알려야 한다. 도 스스로 후배를 위하여 희생하고 있음을 몸소 보여야하며 그것이 무언중에 체감하도록 해야한다.
나는 믿는다. 학자란 순교자의 정신과 어딘가 통하는 점이 있다고. 학자란 돈, 감투, 계집과 별개의 세상에 살아야 하고 부정불의에 굽힐줄 몰라야 하고 끝에 가서 붓을 든채 책상머리에서 쓰러진다는 것을 최상의 영예로 알아야한다고 나는 후배들에게 가끔 일러주기도 한다. 그러한 학자가 바로 가톨릭신자일때 그 값은 더 빛날것이다.
이것은 사제의 생활에도 통용될 것이 아닌가 한다.
봉사란 자기생활을 정화하고 수련하고 자질을 갖춘 위에서 또는 그러한 노력이 지속되면서 운위될것이다. 이것 없이는 자칫하면 위선과 속물로 오해되기가 쉽고 나아가서 일반에게 가톨릭의 매력을 잃게 할 우려도 없지 않다.
연구실과 관련을 가진 사회사업에 불려 나갔을 경우 학문에서 닦인 품위, 성실성, 사상, 그리고 가톨릭의 정신이 자연 풍겨지는 경지에까지 도달했으면 한다. 이것은 이웃과 후배나 젊은 세대에게 흠모를 자아내게 할 것이며 설교나 직접적 지도는 그 다음 단계의 작업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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