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들은 것도 같은 순백의 고체가 고요히 눈이 되어 차곡 차곡 쌓이고 있다. 정말 오랫만에 보는 눈이다. 먼 옛날에 잃었던 동심을 되찾아 눈속에 딩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시야에 전개되는 백설의 잔치, 혼탁한 도회의 공기가 차분히 가라앉고 백의를 입은 온 만물이 대자연의 섭리를 마음껏 음미하고 있다.
그러나 단 하나 인간은 재주가 좋아서인지 그 옷을 입지 않아도 된다. 마음은 고향을 찾아 자연속으로 치달리지만 사람들은 한사코 도래질하며 현대는 낭만을 잊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메마르다-비록 술의 낭만이 있고 춤의 낭만이 난무하지만 새벽 잠 속의 혓바닥은 허황한 삶을 느끼게 할 뿐이다. 그런데 메마름은 그들에게만이 아니고 여기에도 있다. 『서로 평화의 축복을 나누십시요』마이크를 통한 사제의 전자음성이다. 성전에 메아리치는 이 소리가 어쩌면 그렇게도 메마른지, 아니 사제의 음성에 메마른 것이 아니라 그 메아리가 메마르기 짝이 없다. 『주님 저는 비록 저 교우와 평화를 나누려 하지만 그 사람은 그런 생각이 전혀 없어요』 『주님 저 사람은 바리새이같은 위선자와 평화를 나누는척 해도 실은 거짓표정이니 속지 마십시요』그래서 어쨋다는 말인가? 그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달라는 말인가? 마음으로 나누는 악수, 따뜻한 정이 오가야 할 그 순간, 이같이 헛갈린 심정으로 유다스를 찾아 매를 쳐야할까…성당 마당에는 천진한 아이들의 눈싸움이 한창이다. 정말 오랫만에 내린 눈이지만 그 낭만을 즐기기엔 너무나 메마른 인정에 우울해지기만 한다.
하느님의 사랑은 저 눈발같이 온 누리에 내리시건만 유독 나만이 너만이 재주껏 피하려하다니 언젠가 다시한번 백설의 잔치가 벌어질때 그땐 서로 정다운 웃음으로 수백한 눈의 낭만을 서로의 마음에 심어주고 평화의 인사를 나누어야겠다.
▲지금까지 홍시길전데 조 엠마누엘, 고영희, 박 까타리나 4분 수녀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번부터는 부산 박휘석씨, 대구 임종덕씨, 서울이희묵, 유지임 4분 전교회장님이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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