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1월 11일)을 통해 부정부패 일소를 부르짖는 일반사회의 여론이 고조되고 있음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사회를 좀먹고 국가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고질적 병폐』인 부정부패를 발본색원(拔本塞源)하기 위한 대통령의 각오는 5ㆍ16혁명 당시와 다름이 없으나 다만 그 방법을 바꾸어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결의를 표명한데 대해 환영의 뜻을 표한다.
아울러 사회변혁은 제도의 변화와 더불어, 그 제도의 근원이요 주체이며 목적인 인간자신의 변화가 합치할때 더욱 쉽게 일어날수 있으므로 그 결의에 기대를 걸며 적극 협력할 것을 다짐한다. 흔히 현재의 부정부패가 급격히 발전한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경제 발전으로 풍부해진 물적 재화에 흑하여 물질을 만능으로 생각하고 그것으로 권력과 지위, 나아가선 더 큰 이익을 보고자 하는데서 부정이 빚어지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탐욕과 물질, 재화를 개인의 최종목적으로 삼는 가치관의 전도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정부패란 말은 벌써 옛부터 현세적 부와 권력에만 급급하던 사람들에 의해 행하여진「매관매직」이니「탐관오리」니 하는 말로 우리 귀에 익은 것이고 그것이 다만 변화된 정치, 경제, 사회구조로 더욱 복잡해지고 변형된 형태로 나타났을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이 돈이나 기술자 부족보다도 재물로 인해 자기를 상실한 사람들에 의해 정체되고 있음은 뜻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적하는 바이다. 『탐욕이라는 병패에 걸린 개인이다 국가는 도덕적으로 덜 진보하였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그러므로 지금 거론되고 있는 부정부패 일소에서 먼저 있어야 할것은 인간마음의 변화와 자기를 발견할수 있는 새로운 휴머니즘과 인간관이 확립되어야 겠다는 것을 강조하는바이다. 이를 위해선 사상적 기초가 빈약한 단순한 도의와 윤리의 재건만을 부르짖는다고 성취될 수 없으며 현대문명에 휩싸여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때문에 반성의 기회를 가지지 못하여 무디어진 양심의 회복만을 부르짖는다고 이뤄질 일이 아니기에 부정부패 일소에 난점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한민국 안에 존재하고 한국민과 함께 살고 함께 길을 걸으면서 같은 운명을 지니고 있는 한국의 모든 신자들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기를 버린 스승의 모범을 따라 정의와 사랑이 지배하는 인간다운 한국사회 건설을 위해 뜻있는 모든 이들과 협력하기를 촉구하여 마지 않는다.
지금 우리나라는 중진국으로서 국제사회에로 발돋음하기 위해선 더욱 많은 기술자가 필요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물질에 대한 애착때문에 잃어버린 인간을 도로 찾아줄 현인들이 필요하며, 재화와 권력의 획득만을 위해 타인의 이익을 생각지 않고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참된 사랑과 우정을 베풀어주어 물질의 감옥에 스스로 밀폐시켜 버린 그들의 마음을 열고, 보다 높은 가치를 볼 수 있게 할 사람이 필요하다.
또한 개인의 인격향상과 인간사회의 발전은 서로 의존하고 있으므로 윤리에 대한 사회적 연대책임의 중대한 임무를 깨닫고 개인주의적인 윤리관을 벗어나서 가치질서가 혼란을 현세적 시민생활속에 하느님의 법을 새겨주는 일은 바른 양심을 가진 신자들의 책임이며, 그렇게 하기에 인색치 말아야 한다.
비록 그리스도의 신자들이 천국을 향해 가고 있는 순례자라 할지라도 이 세계를 보다 인간 다운 세계로 건설할 의무는 항상 있는 것이다. 이것은『죄에 떨어진 인간 생활과 문화를 끊임없이 쇄신하고, 언제나 당하는 죄의 유혹에서 생겨나는 오류와 악을 극복하며 제거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기반을 둔 생활때문이며 이는 그리스도교인의 본질에 속하는 근본사상이다.
하지만『교회에서 선포하는 메시지와 복음선포를 위탁받은 사람들의 인간적 나약성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부정부패에 대해 우리자신도 반성해 보아야 한다. 이 사회에 과연 박 대통령이 지적한대로 부정부패가 뿌리깊게 박혀있다고 한다면, 그 깊이가 깊은 만큼 우리 자신을 더욱 되살려 보아야 한다.
이렇게 부정이 만연되는 동안 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아무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였다면 과연 교회가 이 사회의 영혼이요 소금이요 누룩이라고 하겠는가. 만일 앞으로도 계속하여 부정부패가 심하여진다면 그것은 곧 사회로부터 교회가 소외당함을 뜻하며 더 나아가선 사회부정의 공범자가 될것이다. 선행은 언제나 한사람의 것이 아니고 그 대상과 함께 하는 것이라면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선에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사회부정도 꼬리를 감추어야 한다. 지금 우리교회가 사회에 필요하다면 하루속히 부정부패의 뿌리를 뽑는 운동에 솔선하여 끝없이 싸워나가는 일이다. 종교생활이란 단지 경신행위나 약간의 윤리의무를 수행하는 것만이 아니다. 『무질서한 자애심 때문에 항상 탈선하고 있는 인간활동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써 정화하여 목적달성에로 이끌어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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