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는 너희가 항상 만나보리라』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인간다운 최소한의 생활도 못하는 사람들, 실접자, 의지할 곳 없는 늙은이와 고아들, 사람들의 멸시와 격리속에 살아야하는 결핵환자와 나환자 등 구호가 필요한 사람들은 허다하여 이들을 위해 정부기관을 위시해서 각종 사회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며 가톨릭 역시 거의 대부분 외국기금으로 운영되는 자선단체가 있어 그 명분을 세워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애덕의 손실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또 있다. 해마다 전국적으로 당하는 수해와 우리 기억에도 새로운 호남지방과 같은 한해, 제주도의 태풍, 최근에 일어난 동해안과 울릉도의 해일, 화재 등 천재로 인해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는 형제들이 수 없이 많아 지난 64년부터 68년까지 연평균 17만2천4백99명의 이재민을 냈다.
이들 이재민 구호를 위해 정부와 일반사회의 구호활동은 대체로 활발하지만 가톨릭내에서는 산발적인 모금운동이 있으나 그 활동이 너무 비조직적이어서 효과가 미비한 형편이다.
물론 성탄을 기하여 각 본당과 신자단체가 다투어가며 불우한 사람을 찾아 위문하기도 하지만 이재민 구호에선 사회보다 교회가 오히려 조용한 것이 지금까지의 사정이다.
우리가 빈곤과 천재로 인해 불우하게된 그들을 돕고자 하는 것은 그들도 한 하느님의 아들이요 더욱이 같은 국민, 민족이라는 상호연대성에 기인한다. 가난과 재난에 허덕이는 그들을 도외시하고 우리만이 발전했다고 할수 없으며 그들을 구원하지 않고 우리만이 구원될수도 없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이 세상은 하느님의 창조물이며 이 세상 재화는 만인을 위해 있는 것이기에 그것을 많이 가진 자는 적게 가졌거나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나눠주어야 하는 사회정의에 입각한 것이다. 성 암브로시오는 애긍에 대하여 말하기를『네 것을 가난한 이에게 시사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의 것을 그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더욱이 신자인 우리는 기독교의 보편적 사랑이 우리 이웃을 도우라고 재촉한다. 『누가 세상 재물이 있으면서 자기 형제의 아쉬움을 보고도 그에게 자비심을 드러내지 않으면 어찌 그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머물겠느냐』 (요한13ㆍ7) 그러므로 주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신자들이 모인 곳에는 반드시 불우한 이웃을 돕는 운동이 있어야 한다. 가톨릭 신자가 사회인보다 더 잘 살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주의 제자라는 이름 때문이며 그것은 바로 주의 계명이다.
이제까지 국내 가톨릭 자선단체의 현황은 대부분 외국신자들이 보낸 애긍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재민구호를 위해서는 너무나 산발적이고 개별적인 모금방법 때문에 뜻있는 신자들이 가끔 이중 삼중의 모금으로 피해를 입는수가 허다하다.
물론 지금 당장에 많은 자선단체를 우리의 돈으로 운영하기도 곤란하고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과 이해를 증진시켜 장래에 우리 손으로 운영할수 있는 기반을 닦을 필요가 있다. 또 한해마다 예고 없이 당하는 각종 천재에 대한 재민구호에 모순되고 비효과적인 모금 방법을 지양하고 일관성 있는 가톨릭의 구호를 신속하게 하기 위해서는 전국적인 어떤 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바오로 6세 교황도 전 세계 개발도상국가를 도와주기 위해 세계 기금 창설을 제안하였듯이 한국 가톨릭도 한국 내의 빈민과 이재민 구호를 위해 우리의 손으로 구호기금을 설립하고 이 기금의 운영을 위해 주교회의 산하에 빈민구호위원회를 두고 각 교구에 위원회를 설치하여 전국적 기구로 만들기를 제의한다.
이 기구를 통해 교구나 단체, 개인의 산발적이고 고립된 구호활동을 지양하고 재민과 빈민 구호를 위해 계획된 노력의 협력을 기할수 있다. 교황께서도『계획적인 노력은 선의의 개인들이 기회를 따라 제공할 수 있는 원조보다 훨씬 효과적이며 훨씬 좋은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이 기구는 구호의 구체적 방안을 모색하고 실질적인 구호활동을 담당하고 감시하여 이제까지 산발적인 활동에서 가끔 빚어지는 폐단을 없이하며 모든것을 천주교회의 이름으로 하여 일치된 가톨릭을 대외에 선양하는 길도 될것이다.
기금의 충당은 전국 신자들의 헌금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모금 방법은 위원회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겠지만 한 방법을 제시한다면 외국의 예를 따라 앞으로 닥칠 봉재 애긍활동을 전국적으로 벌여 여기서 오는 결실을 구호자금으로 충당하고 아울러 신자들에겐 봉재의 의의와 희생의 뜻을 가르칠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봉재중 한 주일을「애덕의 날」로 설정하여 이날을 전국적으로 봉재 애긍바치는 날로 하여 기금을 마련할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모든 가톨릭신자들이 협력하여 공동기금을 조성하고 이 기금으로 빈민과 재민구호의 수단으로 삼을때 자본주의가 낳은『빈부(貧富)의 무익한 대항심을 없애고』인간사회의 질서를 바로잡고 인간의 품위와 힘을 향상시켜야 하는 교회의 임무를 다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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