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계 주교회의는 그 발표 사항을 공식적으로 확인키 위해 『의장단이 기자회견을 포함한 여러가지 방법을 필요에 따라 신축성있게 채택한다』고 발표했다. 교회내의 중요한 홍보 기구중의 하나인 본지는 이에 대한 소견이 없을수 없다. 우리나라 교회의 운영에 있어서 「추밀원」적 기능을 해온 주교회의의 역할과 사명은 새삼 운위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그 필연적인 중요성과는 반비례로 이 회의에서의 의결사항은 충분히 공지되지 못했던것이 사실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주교회의는 때때로 일반교회 행정 및 일반신도와는 배타적인 관계에 있는듯한 인상마저 없지 않았다. 그것은 적어도 작위적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주교회의의 존재이유에 상당한 손상을 주고 있었다고 볼수 있다. 우리는 「콤뮤니케이션」을 선용하는 기교면에서 교회는 그만큼 낙후되어 있었다는 점을 차제에 강조하고 싶다. 그러나 이것은 문자 그대로 피상적인 기교의 문제일 뿐, 정작 중요한 핵심은 다른데에서 지적할수 있다.
우선 주교회의에 대한 거교적인 관심이 희박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고 행정의 문제라는 데에서 그런 현상을 합리화할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을 보호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교회의 행정이다. 교회의 행정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히 신앙생활의 연장이라고 생각할수 있다.
그 「관심의 희박」은 바로 주교회의가 거교적인 위치에 있지 못하다는 뜻도 된다. 이른바 교회의 「콘센서스」(의견일치)가 소외된 상황에서 주교회의는 공전하는 느낌마저준다. 의제를 채택하는 과정과 절차에서 이미 거교적인 의견은 도외시되고 있다. 그런 전문기구는 물론이고, 의사를 소통할수 있는 민주적인 통로마저 공식화되어있지 않다. 따라서 주교회의 의제 또 그 의결사항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극히 제한되어 있는 실정이다.
의사결정에 있어서 그 최선의 방법은 최선의 의안을 선택하고 최선의 의사를 집약하는것 이외에 더 최선의 길은 없다. 그러나 최선의 의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폐쇄되어있고, 또 배타적이며 독선적일때 그 결정사항을 과연 쉽게 용납할수 있을지 지극히 의심스럽다.
또 이런 원천적인 문제를 떠나 회의의 진행도 역시 문제가 된다. 우리나라 교회 행정의 원칙적인 정책방향이 제시되는 공동관심사를 토론, 결정하는 자리에 그 어느 계층의 대표도 참석하지 않는것은 이해할수 없다. 한 국가의 경우를 놓고 생각해보자. 각의(閣議)는 그 권한이 무제한으로 허용되어있지않다. 국민의 대표가 모인 의회에서 허용한 법률의 범위에서 각의는 자유스럽다. 그 형식의 밀도엔 다소 토론의 여지가 없지 않지만, 아무튼 이상은 그런데에서 찾고있다.
교회 행정도 기술 면에선 이와 구별되지 않는다. 주교회의는 무한히 임의로 진행될수 있다고 할수 있으나 역시 그 경우도 교회 모든 계도이 허용하교 납득하는 한계가 주어져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주교회의에 어떤 형식으로든 계층별 대표가 참석할수 있을 때에 이상적이다. 따라서 그런 전문기구를 둘수도 있으며, 아니면 각 계층의 대표가 「옵서버」로 참가하는 방법도 있다. 따라서 전문가의 증언과 자문을 수시로 받아들여, 명실상부한 「콘센서스」의 총화(總和) 위에서 이루어져야 할것이다.
한편 주교회의의 격상도 중요하다 하위실무자 「레벨」에서 충분히 처리, 시행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까지도 주교회의에 회부함으로써 상대적으로보다 중요한 문제들의 비중을 잃게하는 경우도 없지않다. 이런것은 교회 행정의 비능률과 안일성을 드러내는 무능의 소산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교회의에서 채택된 「기자회견을 포함한 적절한 방법」에 있어서도 우리는 지금까지의 전례로 보아 과연 어느정도의 실효를 거둘런지 심히 의심스럽게 생각한다. 우선 당장 이번 회의 의결과도 「회의록 공개」로 끝내버렸으니 말이다. 주교회의에서 결정된 사항들이 어떤 경로로 해서 왜 그렇게 결정되었는지 알고 싶은 부분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식과 다른 결정이 없지도 않을것이다. 그럴 경우에도 해명이나 설명 한마디 없이 결정사항만 공포해서 소기의성 과를 거둘수 있겠는가? 이런점으로 볼 때 회의의 공개가 가장 바람직하며 따라서 이번의 결정은 또 하나의 문제를 제기하는 인상마저 든다. 「적절한 방법」속에 「회의의 공개」도 포함된 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그것보다 원칙적으로 회의를 공개하고「필요에 따라 비공개」를 채택함이 순서일것이다.
시원스럽지 못하고 무언가 노출되기를 주저하는 주교회의를 볼때 우리는 교회의 비능률 전근대성 그리고 무모한 아집이 아닌가 안타깝고 근심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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