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석에서 이런 얘기를 주고 받은 일이 생각난다. 주일 미사 때면, 성당마다 입당권을 발매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 입당권은 아무에게나 거저 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굳이 그런 번거로움을 고안_해낼 필요조차 없다. 돈을 주고 사야하는 것이다. 이 때엔 열차표나 마찬가지로 등수를 메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누가 말했다. 그럼직도 하다. 가령 1천원짜리는 제대가까이 방석이라도 펴놓은 자리에, 1백원짜리는 맨 뒤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물론 이런 얘기를 우스개소리로 한 것은 아니다.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설왕설래되었다. 그 자리엔 P교수도 계셨다. X신부님도 계셨고, 변호사 한분도 앉아 있었다. 매일 저녁마다 만과신공을 건너지 않는 중견은행원도 함께 이 토론에 참가했다.
반대가 전연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친구는 어디 성당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분개까지 했다. 그럼 돈이 없으면 일요미사에도 갈 수 없다는 말이냐고 그는 윽박질렀다. 그러나 아무도 이 말에 웃지 않았다.
교무금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판공성사의 주기를 1년 4분기로 나누어서 분기별로 고백성사를 받게하고 이때마다 교무금을「체크」하자는 것이다.
좋을것도 같다. 교적만 있다고 교우는 아니다. 더구나 서양식의 본명이나 하나 갖고 있다고 교우는 아니다. 수계하고 열심히 성당에 다니고 열심히 기구를 드릴줄 아는 사람만이 진실한 의미의 교우이다. 따라서 교회는 신앙을 심화운동의 일환으로 이런 교무금 강화안을 실현시키는 것도 좋을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지 않다. 왜 이런 구차스러운 얘기가 나와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 화제는 모두 어느 성당에서 있었던 일요강론에서 비롯되었다. 10원짜리 하나를 주일 연보라고 들고오는 교우들은 생각하기 나름으론 퍽 귀찮을수도 있다. 10원이래야 거지조차 받기를 주저하는 액수의 돈임엔 틀림없다. 강론을 하던 사제도 바로 그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분은 말끝마다『10원짜리 교우』…하고 꾸짖기라고 하듯 언성을 높이셨다.
그 신부님은『차라리 10원짜리 미사엔 참예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씀까지 하셨던것 같다. 실로 듣는 쪽에선 등에서 땀이 났다. 정말 그럴까?…? 어떤 강박관념 때문에 필자는 자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람스러운 고백이지만 필자는 분명히「10원짜리 교우」는 아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회는 왜 그 숙연한 미사 중에 10원짜리 얘기가 이처럼 나와야 하는가? 필자는 미사 중에 내내 이런 회의에 빠져 있었다. 교회 재정의 고갈은 과연 교우들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일까?
차제에 교회는 고도의 경영방식을 도입하고 평신도에게도 그것을 허심탄회하게 공개하여 선의의, 그러나 책임있는 자문과 참여를 기대할 수 없는가.
▲지금까지 본란을 위해 애써주신 시인 구현서씨는 5회로 집필을 끝내고 이번호부터 중앙일보 월간부장 최종률씨께서 수고하시게 됩니다. 독자와 함께 구현서씨께 감사드리며 최종률씨의 건필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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