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중에 司祭(사제) 몇분이 있다.
고교동창들이다. 함께 자란 친구들이니 별 허물이 있을 수 없다. 언젠가 성탄절 판공성사를 받으려고 어느 성당엘 가니 한 친구가 앉아있었다. 친구가 아니라 이때는 엄연히 고해를 듣는 사제이다. 멈칫했지만 금방 뭐 그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해소에 꿇어앉아 『나 무슨 죄를 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강심장이 나에겐 없다.
다소곳이 고해를 받고 나왔다. 막 보속신공을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그 친구가, 아니 사제가 어깨를 툭툭 치는 것이었다. 실로 반가웠다. 나는 그가 사제가 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성당안에서 만나기는 도시 처음이다. 검은 「수단」을 입은 풍채하며, 위엄을 한층 돋보여주는 「로만칼라」하며 떠듬떠듬하는 말씨하며…그는 빼낸 신부였다. 감히 나는『야, 이 녀석 오랜만이구나!』하고 떠들어 댈 용기가 없었다.
나는 어느새 그를 세속의 친구이기보다는 한 존경하는 성직자로서 바라보지 않을수 없었다. 나는 걸음마저 천천히 걷는 그의 뒤를 따라가서 차(茶)를 마시며 오랜 회포를 풀었다.
그러나 나는 이 엄숙한 친구에게 기어이 실수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서울 D극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영화관에 들어갈려고 얼씬거리는데 저쪽에서 누가 반가운 손짓을 하는것이었다. 누굴까 생각하며 가까이 가보았다. 친구였다. 『어, 잘 있었니? 극장에만 다니는구나』나는 무심코 한말이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흔히 입버릇처럼 할수도 있는 말이다. 그 친구는 역시 일항들이 있었다. 떠들어대는 내 말에 그 친구는 적당히 대답을 하고는 저쪽으로 가버렸다.
아차! 나는 그가 사제인 것을 까맣게 잊고 떠들어 댔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수단」을 입고 있지않았다. 여름이긴 했지만 가슴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남방「셔츠」에 물론「노타이」바람이었다. 순간이나마 나는 그 사제의 신분을 망각하고 말았었다.
하긴 요즘 우리 주변에선 사복을 한 사제들을 별로 어렵지 않게 만날수 있다. 물론 일부 수도단체의 사제들에겐 자유복이 허용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사제의 사복이 교회규칙의 위반이냐 아니냐를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 평신도가 가타부타할 일도 아니다.
문제는 수단을 입은 사제와 사복을 한 사제와는 엄연히 다르게 의식된다는 사실이다. 법관들은 왜 법복을 입으며 영국하원의 의장은 왜 거추장스럽게 단장을 짚고 가변을 쓰고 회의를 진행하는가? 물론 그들은 평상시엔 평복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성직자는 이들보다는 더 존경을 받을 직책을 갖고 있으며 적어도 신에게 바쳐진 몸이다. 또한 양심의 죄를 다스린다는 점에서 그들은 「위대한 인간」이기도 하다. 그까짓 사복에 연연해서 「넥타이」나 맨 것이 그들에겐 그렇게 매력이고 즐거움일수는 없는 일이다. 사제는 사제다울 때에만 존경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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