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하게 식당에서 교사와 고등학생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은 적이 있었다. 대화라기보다는 교사가 제자들로 생각되는 고등학생들 대여섯 명에게 당부하는 삶의 지침 같은 이야기라고 해야 옳겠다.
『그저 사람이란 이 세상에서 쓸모가 있어야 한다. 쓸모 있는 사람만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고 쓸모없는 사람은 도태되고 만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쓸모 있는 물건은 값이 나가고 쓸모없는 물건은 값이 안 나가지 않더냐. 사람도 쓸모가 많으면 비싼 값에 팔리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쓸모없는 사람의 값은 똥값이지』.
대강 이런 내용의 이야기였다. 학생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교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쩌면 그 학생들은 저마다、과연 나는 쓸모 있는 인간인가、아니면 쓸모없는 인간인가 하고 자신을 저울질해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선생님 쓸모 있는 인간이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던 한 학생이 물었다.
그러자 교사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 학생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쓸모 있는 인간이란 우선 말야 쉽게 말해서 … 공부를 잘해서 일류대학을 졸업한 실력 있는 사람을 말하겠지. 그리고 … 남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별한 재주를 가진 사람、예를 들면 우수한 기술자라든가、아니면 뛰어난 운동선수라든가…아무튼 자기 자리를 잡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모두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좋겠지. 일단은 일자리가 있는 사람은 쓸모가 있다고 할 수가 있지 않겠니』.
『그럼 일자리가 없는 사람은 쓸모가 없는 사람들이겠네요?』
다른 학생이 약간 불만 섞인 목소리로 따지듯 물었다.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가 있지. 선생님이 너희들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의 요점은、너희들이 사회에 나가서 쓸모 있는 사람으로 대접받으려면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일류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들은 아직 사회가 어떻고 역사가 어떻고 또 정의와 민주주의가 어떻고 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그 시간에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 이거야. 사회나 역사、정의와 민주주의 이런 것들은 그저 시험에 나올만한 문제를 알고 있을 정도면 충분해』
교사의 목소리는 사뭇 강압적이었고 학생들은 다시 침울하게 고개를 떨구어 버렸다. 어떤 학생은 힐끔힐끔 약간 비웃음을 띤 표정으로 교사를 흘겨보기도 하였다.
『너희들이 명심할 것은 참교육 좋아하다가는 너희들 아무도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거야. 참교육 말은 좋지. 그렇지만 말야 사회에 나와 보면 현실은 냉엄하다는 것을 알아야해. 참교육 좋아하다가는 사회에 나와서 바보가 되기 딱 알맞는단 말이야』.
교사는 계속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 교사는 자기가 담임을 맡고 있는 반의 학생들에게 저녁밥을 사주면서 교원노조 지지운동에 휘말리지 말라는 설득을 하고 있는 듯싶었다.
그 교사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며칠 동안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우리의 교육현실이 이래서야 되겠느냐 싶어 통탄을 넘어서 우울하고 슬프기까지 하였다.
인간답게 사는 길을 열어주어야 할 교육이 이렇듯 실용성만을 강조하고 있다니…결국 이런 교육을 받은 우리의 자녀들이 사회에 나오면 어떤 사람이 될까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에서는 능률과 유용성을 지나치게 따져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가 없게 하는 것이 안타까운데 학교선생님까지도 이렇듯 인간의 유용성을 강조하다니、이미 이 땅의 우리교육은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병들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하기야 사회에서 지나치게 유용성을 따진다. 그 교사의 말마따나 쓸모없는 사람은 철저하게 소외당하고 쓸모 있는 사람만이 대접을 받는다. 유용성이 바로 진리가 되어버렸다. 유용한 것이 진리이고 진리가 바로 유용성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관계까지도 유용성을 계산하게 되었다. 내가 저 사람과 사귀면 내게 얼마나 유용한가를 따지게 된다. 심지어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유용성을 따지며、부모 자식 간에도 유용성을 생각한다. 내가 우리자식한테 얼마만큼 투자하면 훗날 자식으로부터 얼마만큼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투자효과를 따진다. 그래서 어느 교육보험회사에서는 『여러분의 자녀는 가장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은행입니다 그러니 자녀들의 교육에 투자 하십시오』라는 선전 문구를 즐겨 쓰고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이 사람의 가치를 유용성으로 따지게 된 것은 미국의 실용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 실용주의가 오늘날 미국을 고도산업사회로 만들었고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데 큰 도움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실용적 가치를 생각하다보니 쓸모 있는 기계를 많이 만들게 되었고、그러자니 자연 산업화가 가속화되고 이와 함께 자본주의가 발전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결과 인간성의 말살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래서 어느 작가는 『미국에서 휴머니즘은 이미 죽었다』말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금세기를 인간의 사망시대라고 하는 것도 이와 같이 인간의 가치를 유용성으로 계산한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인간의 가치는 누구나 똑같다는 것을 배우고 깨달아야한다. 쓸모 있는 사람이나 쓸모없는 사람이나 인간의 가치는 고귀하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그런 인식의 바탕위에서 만이 축복받는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며、진실한 사랑의 힘이 발휘될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가치는 누구나 따질 수 없을 만큼 고귀하다는 것은 교육을 통해서 인식되어져야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네 교육현장은 그렇지가 못하다는 데에 문제가 크다. 이런 의미에서 참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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