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사회의 딴곳이라면 그 애들은 나를 붙잡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어린 마음이지만 정이 들어 있었습니다. 취침나팔이 불때까지 나는 아무말 없이 있었습니다.
교도관이 와서 열쇠를 열고 나의 번호를 불렀습니다. 나는 일일이 악수를 하고 그곳을 나왔습니다.
신분증 대조가 끝난후 파란 수미복을 벗고 들어올때 입고온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간수장 앞에서 다시 들어오지 말라는 주의말을 듣고 교도소 문을 나왔습니다.
그 철문소리는 정말 소음중에서도 최고음에 속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오니 공범들이 택시를 잡아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위로의 말은 달콤했지만 뒷맛은 항상 쓰고 매웠습니다. 택시속에서 옷을 갈아입고 바로 남포동으로 갔습니다.
식사를 하고 단골 맥주홀로 들어갔습니다. 공범들은 내 잔이 비워지기 전에 자꾸 권했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3~5살 위지만 친구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러나 평시엔 꼭 형 대접을 해야지 안하면 그 뒤엔 항상 완력을 나에게 행사하는 그들.
얼마나 마셨는지 몽롱한 정신 속에서 나는 언제 교도소 안에 있었던가? 하리만큼 현재의 기분에 취해있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 11시가 넘는 시각. 머리가 아프고 속이 쓰렸습니다. 약을 먹고 목욕탕에 가 목욕을 했습니다. 그 후 나는 한달간 아무것도 안하고 쉬었습니다. 누구나 교도소에서 나오면 한달간 휴식을 취해 몸을 회복시키었습니다. 할일 없이 노는 기회에 나는 부산에 내려갔습니다.
동생 영순이는 반가와 했습니다. 두달만에 만난 우리는 서로가 할말이 없었습니다. 얼굴만 한번 보고 헤어져 서로 딴 방향에서 다음 만날날을 기약할수 없는 나 자신이 마냥 부끄럽고 죄스러웠습니다.
한달을 놀고 나는 또 해야했습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범죄를 해야 하는지? 그러나 나는 안하고는 안되었습니다.
뒤의 보복. 그 당시 나는「똘만이」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고 배당도 없었습니다. 똑같은 하루 24시간이지만 그날 모든 일이 달랐습니다. 집행유예 받고 난 후부터는 더 불안하고 자꾸 여위어 갔습니다.
이번에 잡히면 집행유예까지 최하로 1년6개월은 각오해야 합니다. 불안속에서 하는일. 잘 되지 않는 것은 누구나에게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나온지 두달 보름만에 나는 또 붙들리고 말았습니다. 북부산 경찰서에 들어가니 긴장되었던 마음은 풀어지고 모든 현실 속에서 도피하고 싶었습니다.
이젠 동생 영순이도 영 못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정말 미칠것만 같았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부었습니다. 담당 형사도 나의 사정을 듣고 안타까와 했습니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 아무리 후회해도 때는 늦었습니다. 다시 들어가는 교도소, 언제 들어도 악마의 절규같은 소리, 검사의 출소 증명서가 없으면 나갈수 없는 영어의 몸, 나는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고 싶었습니다.
나간지 두달 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아직 아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나는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할수도 없는 자유를 잃은 인간이기에 말없이 지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도 공범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무정하고 의리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의 마음은 그들을 기다렸습니다.
벽은 빨간벽돌 옷은 파란 죄수복, 이제는 도피할수 없는신세, 구형은 단기 10월에 장기 1년, 그러나 집행유예가 있기 때문에 나갈 구멍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구형받고 온 후부터 나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판사가 다시한번 내보내주면 이젠 다시는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살겠는데…. 「미친척하면 내보내주지 않겠나」이런 생각까지도 떠올랐습니다.
언도날은 어김없이 돌아왔습니다. 포승에 줄줄이 엮이어 법정에 들어가는 죄수들, 구경하는 사람들 모두 생각이 달랐습니다.
이곳에 온 죄수들은 전부 내 마음과 같았을 것입니다. 한사람씩 불러나가 언도를 받았습니다. 내 차례가 와서 나는 판사 앞에 서서 나의 형량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피고는 집행유예 받고 나간지 얼마되지도 않고 재기의정도 없지만 아직 어린 소년이므로 최저 형량을 선고한다. 징역 단기 18개월, 장기 1년에 처한다. 구금일수 중 55일을 본 형에 삽입한다. 피고! 할말 있는가?』나는 고개만 숙인채 할말이 없었습니다. 공판이 끝났습니다. 수갑을 차고 포승에 묶여 차에 올랐습니다.
죄수들의 표정은 전번에 집해유예 받았을때와 같았고 다만 틀리는 것은 이번에는 나도 징역받은 축에 끼여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 죄수도 있었습니다. 징역 1년을 받았는데 죄명은 절도, 식모살이 하다가 주인집에서 도둑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들어왔다가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교도관이 달랬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그 울음소리에 나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앞으로 집행유예까지 1년6개월동안 살아야하며 또 동생도 못볼 것을 생각하니 더욱 슬펐습니다.
나는 저지른 죄에 대해 죄책감이 없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이 귀찮아졌습니다. 방안 사람이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끝내 대답을 안하고 구석에 가서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왜 우는지도 나는 몰랐습니다. 그냥 슬퍼서 마냥 눈물이 마를때까지 울고싶었습니다. 울다 잠이 들었습니다.
깨우기에 일어나보니 밥먹으라고 했습니다.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안먹겠다고 했습니다. 몸을 생각해서 좀 먹으라고 했지만 나는 뿌리치고 또 울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속이 쓰리고 배가 고팠습니다. 밥이 들어왔습니다. 검은 보리밥에 콩이 띠엄 띠엄 섞여있는 3등식과 시래기국. 앞으로 1년6개월 동안 이 밥을 먹어야 하는데 계산해보니 무려 1643그릇, 한그릇을 먹어야 8시간씩 강해진다고 생각할때 어떻게든지 돈을 벌어서 동생들과 함께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속에 나는 젓가락을 들고 한그릇씩 감해갔습니다.
이튿날 포기한다는 용지에 지장을 찍고 머리를 박박 깎았으며 소년수로 확정된 후 나는 또 인천 소년교도소로 이감되어 열차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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