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톨릭시보「일요한담」난에서 최종률씨는「사복입은 신부」란 제목에서「사제는 사제다울 때에만 존경을 받는다」고 했다. 이 말은 최씨가 사제들을 위하는 진심에서 우러난 경고하고 생각하여 절대적 찬의와 동의를 표하고자 한다. 사제는 신에게 바친 몸으로 양심을 다스리는 위대한 인간이라고 했다. 그반면 그까짓 사복에 연연하여 넥타이나 맨 것이 그렇게 매력적이 될 수 없다고 비꼬았다. 사제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속복을 입기 시작한 후 신자들이나 비신자들의 여론을 종합해보면 결코 좋은 평이 못 된다. 언젠가 서양신부들은 넥타이 차림한다는 말을 들었다. 설령 그 사람들이 그렇다고해서 우리도 무조건 따라가야 할 필요는 없을 줄안다. 우리 한국의 고래풍습은 외복차림에 관심이 지대했다. 임금이 입는 옷과 정승 판서 일반관리가 입는 옷차람은 서로 판이했다. 양반과 상놈이 입은 옷차림 역시 달랐다. 지금도 이러한 풍습의 관념은 우리들의 혈관속에 맥맥히 흐르고 있다. 자기들의 본당 신부가 체신에 맞지않는 옷차림을 하고 더구나 정장을 하고 예의를 갖추어야 할 회합에라도 나타나면 신자들은 몸둘 바를 모른다.
현재 거의 전국적으로 신부들의 옷차림을 보면 잠바차림, 넥타이차림 와이샤스차림 등 실로 형형색색이다. 이것은 분명 사제들의 복장에 대한 에티켈에 위반이다. 그 때문에 신자들이 신부에게 인사하려 할 때에도 신부인 것을 확인한 후에야 인사할 지경이니 이 얼마나 어색한 일이겠는가.
신부들이 속복을 하고 신비신학자들이 『하늘의 천사들도 사제들의 신권을 부러워한다』고 까지 주장할만큼 지극히 고귀한 사제직을 숨기려 드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폴레옹은『사람의 단정한 옷차림을 보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과연 지당한 말이다. 만일 군인이 자신의 신분과 직위를 표시하는 군복차림을 아무렇게나 하고 다닌다면 군인정신은 해이해지고 군인으로서 가져야할 용기와 사기를 상실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제들은 사상세계에서 신전을 하는 군인이다.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단정한 복장을 착용해야 될 것은 물론 또한 사제들은그리스도의 교훈대로 세상의 빛, 소금, 누룩이어야 한다. 만사에 있어 대중의 비난의 대상이 되면 누가 사제들의 빛을 받으려하겠으며 소금과 누룩의 영향을 감수하려 하겠는가.
정말 그토록 사복차림에 넥타이 매기가 소원이라면 전국적으로 통용될 수 있고 또 가톨릭 언론기관에 널리 보도하여 누구나 보면 즉시 가톨릭신부로 알아볼 수 있는 복장과 뱃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절대로 무작정 완고주의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 간편한 옷차림을 해도 무방할 것이다. 등산갈 때는 등산복차림으로 낚시터엔 낚시꾼차림으로 무더운 여름에는 사제의 품위를 손상치 않을 정도의 옷차림 등이 오히려 필요하다고 본다.
기계를 운전하는 모든 공장에서는 기술공들의 기술이 절대 필요하다. 전반적인 우리의 생활, 특히 솔선수범하는 지도자의 입장에 있는 사제들의 성직생활에는 지혜와 기술이 필요함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사제들은 사회모든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과 도덕군자로서의 모범을 주기 위해서라도 아주 세심한 처신기술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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