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사때마다 성체축성 직후에 『주께서 오실때까지 우리는 주의 죽으심을 전하며 주의 부활하심을 굳세게 믿나이다』하고 부활에 대한 신앙고백을 한다. 또 사도 바오로는 꼬린토 전서 15장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가르침이 헛된 것이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수 밖에 없을것입니다 …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단순히 이 세상에만 희망을 두고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중에서 가장 가련한 존재일 것입니다』라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에 대하여 강력 설파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부활의 신앙은 부활을 기념하는 매주의날에 이를 고백하고 또 1년에 한번씩 부활절의 대축일을 지내면서 그 신앙을 새롭게 해온지 누금 1940번째이다. 그러면 「평화는 가능하다」고 외치고 있는 73년 오늘의 교회의 부활신앙은 어느 지점에 서있는가? 부활은 그리스도 신앙의 정점인 동시에 희망의 결승점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한번 부활하셨다가 만 것이 아니고 지금도 살아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곧 부활이오 또 희망 자체이시다.
다시말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안에 우리의 부활을 바라보고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항상 교회안에 또 이 세상안에 그리스도를 현재케 해야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앞에 지금 나타나 계시다는 것을 신앙의 눈으로 보면서 또 이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증거해야 된다는 말이다. 과연 오늘날 우리의 신앙이 여기까지 와있는가. 우리는 부활의 희망에 대한 기쁨에 차있는가. 아니 오늘 당장의 현실에 대한 실망과 비통에 잠겨 있지나 않는가. 오늘의 세계의 현실은 정말 물질주의의 극단에 이르렀고 인간의 존엄성은 일락천장(一落千丈)의 형편으로 비인간화의 길을 줄달음치고 있다. 정의는 빛을 잃고 그 대신에 부정과 부패가 판을 치고 있으며 평화는 겉모양으로 있는것 같지만 사실은 부자와 강자가 가난한 자와 약한 자를 짓누르는 억압 아래서 질식하고 있을뿐이다.
또 자유는 인간의 궁극적인 기본권이지만 전체주의적 사상이나 체제 아래서는 비참한 부자유를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우리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사랑에 있어서도 말만이 풍성할뿐이고 실은 시기와 미움이 가득한 이 세상이 아닌가? 이러한 사회현상은 그리스도의 현존이 있다고 말할수 없다. 그리스도의 현존을 증거할 사명을 지닌 교회가 과연 그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수 있을까. 이러고도 우리는 이 세상에 정의가 실현되고 평화가 가능하다고 장담할수 있을까. 교회는 지난날의 신앙자세에 대해서 일대반성(一大反省)을 해야할 때가 왔다. 부활의 희망을 믿는 우리는 자신만의 부활에 그치지 않고 세상 전체의 부활을 이룩해야할 신앙의 자세바꿈이 있어야 하겠다.
이러한 시점에서 교회는 자체안의 내향적인 면과 사회에 대한 외향적인 면에서 재반성 해봐야겠다. 첫째로 교회안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백성들의 일치를 긴급과제로 삼아야겠다. 왜냐하면 제2차 「바티깐」공의회 이후의 새로워지는 교회의 면모와 격동기에 있는 사회환경의 영향을 받아 교회 안에서도 과거처럼 일사불란한 모습은 변하여 마치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양상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의 현대화를 위한 하나의 발전과정으로 받아드려야 하고 또 지혜롭게 극복해야할 문제이다. 요는 이런상태일수록 교회의 일치성은 더욱 강조되어야겠다. 또 그것은 교회법이나 명령과 순명이란 제도적인 면에서보다 어디까지나 대화의 방법을 통한 일치를 이룩해야겠다. 대화란 일방통행적이 아니고 상호교환으로 이루어진다. 주교와 사제단 성직자와 신도들 사이에 있서 항상 그리스도의 현전(現前)에서 대화한다는 지향으로 한다면 여기는 우월의식이나 열등의식은 있을수 없고 겸허와 개방된 마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는 이룩될것이다. 오늘의 사회는 개방사회라고 한다. 교회란 특수사회 안에서도 서로가 어떠한 과거의 선입견을 탈피하고 현대사회 심리에 알맞게끔 흉금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또 그것에 익숙할 수 있는 방법론을 연구하며 실습하도록 교육훈련되어야겠다.
다음으로 교회의 대사회적 면에서는 현대세계 사목헌장이 교회와 사회와의 대화문제에 대해 원칙적인 방향제시를 명시했다.
과거 여러 세기당안 교회는 현실사회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왔다. 즉 교회는 성(聖), 세상은 속(俗)이라는 이원론적 사상에 사로잡혀 세상을 소외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결과 과학과 기술문명으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온 세상은 도리어 마치 교회를 무용지물처럼 소외하고 말게되었다.
이에 착안한 제2차 「바티깐」공의회는 교회와 사회와의 재회합을 절실히 부르짖는 「교회의 현대화」를 내걸고 교회의 일대쇄신운동에 나섰다. 이것은 현실사회안에 교회를 이끌고 들어가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까지 교회 안에만 가두어 두었던 그리스도를 사회속에 내모시고 그를 정의와 자유와 평화와 사랑의 현존으로 증거해야 겠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는 그 필요성을 더욱 느낀다.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는 교회사회 안의 교회로서 적극적 능동적인 대화와 참여의 자세를 취해야겠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잠자고 있던 신앙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되기도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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