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23세는 1963년 4월11일 「지상의 평화」란 회칙을 반포하였다. 이 회칙은 오랫동안 침묵을 지켜왔던 교회가 세계를 향하여 인류의 평화에 관한 근원적이며 차원높은 견해를 장중하게 선언한 것이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교회가 자의 또는 타의적으로 소원해 있던 현대세계와의 폭넓은 대화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 결과는 당시의 교회 안팎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더욱이 교회밖의 세계는 UN을 위시하여 기독교 국가들과 개발도상의 모든 국가와 민족들에게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지 이미 20년에 가까운 때이어서 겉으로는 평화가 계속되는것 같았지만 사실은 자유세계와 공산진영의 냉전과 남북세계의 경제적 불균형에서 오는 빈부의 격차 지배민족과 해방민족들과의 갈등 인종문제 등등으로 진정한 평화가 아닌 가장된 평화이거나 분쟁을 내포한 잠정적 평화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회칙은 모든 종교와 국가와 민족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을수 있었다.
이에 회칙의 개요를 살펴본다면 첫째로 인간을 권리와 의무의 주체자로서 규정하고 그 지성과 자유의지를 침벌할 수 없는 인간의 존경성으로 선언하는데 기초을 두고 인간집단의 공동선을 확보하기 위하여 인간대 인간 인간대 공동체 민족대 민족 인종대 인종 강자대 약자 부자대 빈자 등등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의 규준을 진리와 정의와 자유와 사랑안에서 인류궁극적인 평화를 추구하는데 두었다. 그리고 그 표현은 부드럽고 아름다우면서 인간의 양심을 찌르는 위력이 있었다. 이것이 곧 앞에서 말한바와 같은 온세계의 큰 반응을 일으킨 소이라고 할수있다. 교회는 이회칙에 연이어 현대세계 사목헌장과 제민족의 발전에 관한 회칙등을 반포하여 회칙목표의 구현을 뒷받침하였고 또 교회는 교황청안에 「정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하여 구체적인 방법 등을 연구 실천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일단으로서 72년에는 그 해를 정의와 평화의 해로 설정하고 「정의 없이는 평화없다」란 구호를 내걸고 전세계교회는 많은 노력을 경주(傾注)했고 또 73년 올해는 계속하여 「평화는 가능하다」는 기치를 내세웠다. 이것들은 모두가 「지상의 평화」 회칙을 반포한지 10년되는 오늘날 요한 23세의 세계를 향한 위대한 광야의 소리를 되새기며 그것을 실천단계로 옮기는 행동이라고 볼수 있다. 우리 한국교회에서도 교황 바오로 6세의 높은 뜻에 따라 작년과 금년의 두 해에 걸쳐 정의와 평화를 위한 운동으로서 서울대교구 주최이기는 하지만 사실상은 전국주교 총 동원으로서 사순절의 특별강론을 통해서 72년은 「정의」 73년은 「평화」에 대해서 연속 12회에 달하는 대설교가 강행되어 교회 안팎의 많은 사람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이끌었다. 이는 한국 천주교회 사상 획기적인 업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70년대의 오늘의 사회는 과연 이 회칙이 요구하는 평화가 어느정도의 상태에 있는가. 진정 평화는 가능한가? 회칙이 반포한 10년전과 오늘을 비교해 볼 때 사회는 얼마만큼 변했는가.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있는데 과연 오늘의 세계는 십년전에 비해서 정말 강산이 변하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이다. 과학과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말미암아 공간과 시간의 단축은 엄청나게 이루어져 세계와 세계, 인류와 인류사이의 거리는 접근되었고 따라서 상호교류와 유무상통의 양상은 일변되었고 심지어 과거의 사상체계로 인한 냉전형태는 지금은 해빙무드로 급전(急転)하고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표현상으로는 마치 「평화는 왔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 세계안에는 인도지방의 전운이 잔존하고 중동지역의 분쟁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우리 한국을 위시한 몇몇나라의 분단상태가 일촉즉발의 위험을 내포한채로 남아있다. 또 경제사회면에서도 선진 강대국들의 부의 팽창과 개발도 상국가들의 발전은 놀랄만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가진 나라와 못가진 나라의 격차는 더욱 커지고 부자와 빈자의 불균형은 갈수록 심해가는 현상은 숨길수 없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면에 있어서는 소위 기독교 국가안에서도 극단의 물질만능과 쾌락위주의 세속주의에 휩쓸려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권력행사의 사례가 나타나고 공산체제의 국가는 물론이고 소위 신생 민족국가들에 있어서는 공권력의 구조나 행사에서 인간의 기본권인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는 것이 항다반사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들은 진정한 평화라고는 간주할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의 세계안에 눈길을 돌이키기 시작된 교회는 어떻게 지상의 평화를 가능케 할것인가? 바오로 6세 교황은 이 점에 대해서 『평화를 위한 노력은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막중한 의무』라고 지적하면서 인간 노력의 나약성 때문에 『하느님의 도우심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 세계의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 지상의 모든 진리가 아닌 거짓과 정의가 아닌 불의와 자유가 아닌 압도와 사랑이 아닌 증오와의 대결에 과감히 나아가 끊임없이 「평화」를 말하고 행동해야 하겠다. 그리고 「지상의 평화」곧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시도록 열렬히 기도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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