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변엔 자기를 잃어버리고 헤매는 사람은 없는가? 순간의 부끄럼으로 삶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어린 양들에게 따뜻한 빛을 안겨 주시는 분, 우리는 어느 순간순간에만 그 빛을 느낀다. 꺼져가는 신앙의 불씨가 동료의 사랑과 성사의 힘으로 다시 불타 오르게 됐다면서 천주님께 기쁨들리는 어느 여교사의 냉담 청산기를 여기 소개한다.
내가 영세를 받은 것은 10살 되는해 성탄절이었다. 굳건한 신앙의 토대도 없이 주위사람들에게 휩쓸려 얼떨결에 받은 영세였다. 그 후 2년동안 통회없이 고백성사를 받고 감사하는 마음없이 만과를 드리는 식의 신앙생활이 계속됐다. 그나마도 겨우 2년. 한발자국 두발자국 멀어져서 결국 10여년 동안의 냉담을 가져왔다.
그러나 한번 물로써 원죄를 씻어주신 천주께서 끝내 버리시지 않은 탓인지 내 머리속에서는『난 천주교인이다』는 생각이 늘 떠나지 않았다. 잠자고 먹고 자랑하고 뛰노는 그런 일상이 아닌, 영원하고 크고 포옹력 있는 실체가 있을것 같긴한데 잡을 수 없는 안타까움. 간혹 앉지도 서지도 못할만큼 안절부절하며『내 천주여! 죄인이 올시다』면서 어느 작은성당에 엎드려 부르짖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러나 오랜 냉담의 고집과 반발 때문에 스스로 교회를 찾지도 못했고 또 기회가 있어도 물리쳐왔다. 지난해였다. 교무실앞의 개나리가 유난히 노란 어느 무르익은 봄날 직원조회때였다 맞은편에 앉은 양호선생님이 인사기록카드를 정리하시면서 종교란에「천주교」라고 적으셨다. 어찌된 일인지 이번만은 추호의 망설임이나 스스러움 없이 오후에 양호실로 찾아갈 수 있었다.
이렇게하여 그 주일 일요일에 계산동성당에 가게되었다. 늘어선 검은 돌기둥, 멀리 보이는 제단…. 드디어 떠돌아 다니던 한마리 양은 천주님 품안으로 찾아든 것이다. 그 후로 미사에 빠지지 않으려고, 기도를 게을리 않으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그처럼 목말라하고 충족되지 못해하던 영혼의 갈증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헛들고 있는 느낌. 천주께 와락 달려들지 못하고 손가락만 빼물고 뒷전에 서있는 느낌…. 이러한 내게「작은꽃 교사회」여러 선생님은 고백성사 볼 것을 권유했다. 헤아릴 수도 없는 엄청난 죄의 무게에 눌려 교회를 찾은지 반년이 지나도록 고백성사를 못보고 있었던 것이다. 수동적이고 피하고자 하기만 하는 나에게 여러 선생님들이 더 적극적이었다. 어느날 교사회 K선생님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요안나, 소신학교 R신부님께 말씀드려 뒀어! 토요일 3시에 학교로 찾아가! 꼭!』신부님께, 지은 죄를 고하기만 하면 아무리 무거운 죄라도 다 없어지고 순백의 영혼이 된다니…! 너무나 엄청난 천주의 약속에 오히려 질리는 심정이 된다. 그리고 어떻게 쑥스럽게 제가 지은 죄를 제 입으로 말할수가 있어? 아니야, 그냥 믿는거다. 천주께서 세우신 성사니까 그저 믿는거다. 하지만….
이런 착잡한 심정으로 선목신학교에 이르는 언덕길을 올랐다. 카랑카랑 건조한 가을바람에 길섶의 마른잎이 하늘거린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쩌면 그처럼 맑았던지!『아아』소리치면 그대로 되받아『아아』울려올것 같았다. 가늘게 눈을 뜨고 올려본 가을하늘의 그 높음에, 그 푸름에 차라리 연유모를 서늘한 한줄기 슬픔의 강물이 가슴속을 쏴아 지나갔다. 그때 언덕 윗쪽에서『교사회에서 오신 선생님이시오?』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텅빈 운동장 너머 본관 건물을 배경으로 서계신 검은 모습. 검은 수단자락을 바람에 나부끼며 죄인을 기다리는 모습. 천주를 배반했다가 돌아와서도 회의와 신심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알지도 못하는 어느 길잃은 양의 참회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제. 황량한 들을 연상시키는 그곳의 풍경과 더불어 내 정서에 부딪는 감동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것은 감동을 지난 충격이었다. 나는 말을 잊고 신부님 앞에 섰다. 처음 뵙는 분이지만 어서 빨리 죄의 모두를 얘기하고 사함을 받고싶은 생각이 무럭무럭 일었다.
다음날 주일 정성스럽게 영성체를 했다. 자신도 놀랄만한 마음의 변화가 왔다. 주님께 자신을 맡겨버린 마음의 평화 내 가까이 계신 친근한 주님.
천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졌다. 사랑하는 주님을 알고 싶어졌다. 주님께 달려들어 구하지 않고 혼자서 신심이 생기기를 바랐던 내 어리석음이여! 고해와 성체성사의 크나큰 은혜를 외면한채 영혼의 평화와 해갈을 바랐던 이 뒤늦은 후회ㆍ성사가 주는 큰 은혜를 나날이 실감하며 사는 생활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것만은 놓지 않으리! 세상 마칠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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