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말로만 듣던 밤의 완행열차에 올랐다. 설악동 본당으로의 길, 만남의 터로 향하던 길은 설레임과 행복감에 빛났다. 끊임없는 바퀴의 움직임, 그 지난한 노력은 날 잠들 수 없게 했다. 캄캄한 어둠이 깔린 간이역, 외로이 홀로 서있는 외등들에 눈길을 주다보니 내손엔 어느새 새파란 새벽의 문고리가 쥐어져 있었다.
가벼운 바람에 흐르는 감미로운 안개와 짙은 녹음 사이로 하늘거리는 구름들! 열차안의 뿌연 담배 연기와 창밖의 상큼한 바람에 매료되어 어느덧 아흔아홉 고개를 구비 돌아 저 높은 산봉우리에 다다르고 있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짙은 안개, 앞을 가로막는 짙푸름의 공포와 초조감! 갑자기 흐린 눈앞이 훤히 트였다. 뜨거운 열기가 입술을 하얗게 태웠다. 넘어지고 찢기우고 할퀴운 상처투성이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린 자세하고 정밀한 지도 한 장 없었다.
그리고 우린 소망의 길로 떠났던 것이다. 예전엔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은 인간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함을 안타까와했다. 그러나 이젠 저 장엄한 산을 우러르는 작은 영혼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오욕과 미움을 씻어내는 설악산의 그 맑은 정기에 살며시 입 맞추고 싶다.
수녀님도 사무장도 계시지 않은 설악동 본당!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교리와 성가를 가르치시고 손수 미사 준비를 하시던 설악 본당 신부님! 우리성가대와 함께 봉헌하시는 미사 때마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잊지 않으시고 성당 앞마당에서 삼층밥을 맛있게 드시던 그 신부님의 모습!
아, 깔끔한 이층집과도 같은 설악본당은 얼마나 아름다왔던가. 성당에 들어서며 낯선 얼굴에도 「찬미 예수」하고 인사하던 꼬마의 얼굴은 얼마나 평안했던가. 반주가 없어도 성가대가 없어도 그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찬양했을 것이다. 박자와 음정은 좀 틀렸을지라도 그 마음의 찬양은 하느님께 커다란 기쁨이었을 것이다.
이제 온전한 마음으로 하늘의 크신 분께 기도드리련다.
『주님 이 생애의 많은 축복과 건강ㆍ힘ㆍ젊음에 대하여, 온갖 우정의 경이로운 즐거움과 봉사의 기회, 자연의 장엄한 아름다움과 모든 분들의 따뜻함과 부드러움, 저희는 이제껏 받아왔고 또 받고 있는 갖가지 사랑에 대해 감사합니다』라고.
설악동 본당을 떠나던 날, 내게 이렇게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 『아녜스, 행복해야 돼』그땐 그 한마디에 뭐라 대답해야할지 말을 못했다. 이 순간까지 숨 쉬고 살아온 나! 가까운 사람들에 난 얼마만한 빛을 주었으며 또 얼마만한 기쁨의 결정이었는가! 이젠 나도 그리운 말 한마디를 들려주고 싶다. 『그리운 사람이여, 행복하십시오.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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