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이어 터지는 동구 국가들의 변신사건은 커다란 놀라움을 던져주고 있다. 헝가리와 폴란드에서 일고 있는 공산이념의 근본적인 변화는 바르샤바조약기구를 중심으로 탄탄하게 묶여있던 사회주의 체제의 흔들림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하겠다. 소련을 축으로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일당 독재적 사회주의라는 철옹성에 금이 가기 시작한 셈이다.
헝가리 공산당의 「탈 스탈린주의 천명」은 꾸준한 자유노조 활동으로 끝내 개혁이라는 결론을 도출해낸 폴란드의 경우와는 사뭇 다르다. 침체된 경제타개를 위해 이미 복수정당을 인정하는 헌법개정안을 마련해 놓고 있고 내년에는 다당제 하에서 자유총선을 약속하고 있는 헝가리는 집권 공산당이 앞장서 개혁을 추진하는、 개혁의 선봉장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두 나라가 시도하는 개혁정책의 핵심은 복수정당제와 자유선거 등 정치 민주화를 비롯、 중앙 통제경제 대신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를 부분적으로나마 도입하는 경제민주화로 압축할 수 있다.
이 같은 변화를 접하는 시각은 다양하지만 독재적 사회주의의 대부 격인 소련과 민주사회주의의 대표 격인 미국의 입장은 생각 외로 조심스러운 것 같다.
68면 「프라하」의 봄이 소련의 무력진압으로 좌절된 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소련의 침묵을 의외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소련 역시 개혁ㆍ개방 정책을 진행시켜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침묵으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도 성급한 평가를 유보하는 인상이 짙다. 헝가리와 폴란드의 개혁바람이 어떤 결론을 이끌어낼 것인가에 대한 확실한 자신감이 없다는 점이 아직은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이유 같기도 하다.
자유경제체제ㆍ민주사회의 리더로서의 미국의 입장에서 보자면(조금 성급한 진단인지는 모르지만) 對 소련、 나아가 對 공산사회주의 체제와의 팽팽한 이념적 대결에서 일단 유리한 고지를 확보한 셈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반응이 즉각적이지 못한 것은 외신을 통해 알려지고 있듯이 폴란드와 헝가리의 경제난이 워낙 깊은 늪 속에 빠져있다는 사실에도 기인한다고 보여 진다. 전문가들의 진단처럼 폴란드의 경우 신임 마조비에츠키 총리가 이끄는 새 정부라 하더라도 또 미국의 경제 원조를 등에 업는다 하더라도 파국의 경제난국을 쉽사리 풀어나가기 힘들다는 전망이 하나의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ㆍ레닌주의를 기조로 하는 공산당의 지도이론은 크게 훼손되었지만 폴란드의 변신이 완전한 의미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의미 한다고는 단언 할 수 없다. 폴란드의 새로운 선택은 확실히 획기적이긴 하지만 그들은 소련의 동맹국으로서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계속 참여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 역시 앞으로의 폴란드정국에 또 다른 변수로 작용될 가능성이 짙다.
즉 불완전한 개혁(서방세계의 눈으로 볼 때)과 「늪 속의 경제」라는 두 가지 악재로부터 폴란드의 경제를 기사회생시킬 전망이 아직은 불투명하다는 판단을 미국은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오랜 세월동안 굳게 닫혀있던 동구의 문이 열리려 하고 있다는 사실자체이다. 국가의 존립목적이 사회주의 건설의 달성이라는 레닌의 국가론은 더 이상 경제난에 허덕이는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볼셰비키혁명 이후 70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동ㆍ서진영이 이념과 이념으로 뚜렷이 갈라진지 45년이 지난 오늘 헝가리와 폴란드의 새로운 선택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공산당 일당독재를 정당화한 마르크스ㆍ레닌주의를 당 지도부에서부터 포기한 헝가리의 개혁 역시 「삶의 질을 이념 위에 둔」결과가 아닐 수 없다.
열리고 있는 동구의 문을 활짝 열기 위해서는 이들 두 나라의 미래의 향방이 관건이 될 수 있다. 폴란드와 헝가리의 개혁의지가 어떤 모양으로 꽃피우느냐에 따라 제2、제3의 폴란드 헝가리가 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해결의 중요한 열쇠는 해당국이 쥐고 있다. 그러나 경제 원조를 시도하고 있는 미국이나 서방국가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자국의 이익만을 지나치게 추구한 나머지 남미나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될 일이다. 자유경제체제로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하는 이들의 첫 걸음이 좌절되지 않도록 동반자적인 원조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경제를 내세워 신 식민지화를 꿈꾸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아울러 자유경제체제하의 경제 원리를 무조건적으로 우위에 둘 수 없음을 우리는 인지해야 한다. 우리와 서방세계 여러 나라들은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현상을 공통의 취약점으로 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이 모두 똑같은 모양으로 살 수는 없다. 그러나 개인차와 여건에 따라 차이는 있게 마련이지만 그 차이를 최대한으로 좁히는 일은 시급하고 중요하다. 계층 간의 갈등과 반목을 심화시키는 부의 불균형을 잡지 못하면 자유경제체제의 우위론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헝가리와 폴란드의 개혁바람은 우리의 가슴에도 작은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그들의 변화가 성공이라는 결실을 획득한다면 우리의 희망은 좀 더 커질 수가 있다 . 그것은 바로 북한에 대한 희망이다.
때문에도 우리는 부의 공정한 분배를 하루빨리 추구해야만 한다. 우리는 하루빨리 북한도 꼼짝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소득의 공정한 재분배를 통해 「모두가 함께 잘사는」복지국가를 서둘러 건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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