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 부터인가 큰 것이면 좋은 것이며 가급적 큰 것을 마련하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도시의 대주택 단지의 클수록 좋다는 아파트 속에서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는 큰 응접실에서 대형 카페트를 깔고 대형 텔레비전을 놓거나、 다방이나 학교의 휴게실에 어울릴 수 있는 고성능 대형 스피커가 부착된 엄청나게 큰 전축을 마련하고 외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장농과 핵가족으로는 몇 달 먹을 것을 갈무리할 수 있는 대형 냉장고를 들여놓고 교통난과 주차의 어려움이 갈수록 심각하건만 서로 경쟁해서 큰 자동차를 마련하고 큰소리치면서 산다.
이제는 침대도 클수록 좋고 식탁도 클수록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학교도 학생 수가 많고 클수록 좋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도 본래의 설립목적과는 상관없이 모두 대학교로 대형화되었고、 심지어 강의실도 대형화되어 확성기 없이는 강의를 들을 수 없고 뒷좌석에 앉은 학생은 선생님과 얼굴조차 알아 볼 수 없다. 공설운동장도 자꾸만 대형화되어가고 있다.
아무튼 대도시는 날이 갈수록 거대화되어 가고 있다. 병원도 대형화되어 가고 있다.
온갖 종류의 사고도 대형화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한 두 사람 죽는 것은 뉴스거리가 안 되며 대량으로 사람이 죽어야 비로소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돈 버는 것도 일조일석에 일확천금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백화점도 수퍼마켙트도 대형화되어야 인기가 있고、 서점도 대형화되어가고 있다. 온갖 집회도 점점 대형화되어가고 있다. 해수욕장도 신문이나 방송에서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고 보도하면 이미 가려고 작정했던 곳이라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피해가는 것이 현명할 것 같은 데、 그 반도로 백만 인파에 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도박판도 클수록 인기가 높다고 한다. 음식점도 술집도 커야 인기가 있다고 한다. 어디 그뿐이랴. 사람의 눈도 커야 하고 코도 커야 하고 또 어느 부위도 커야 하는데 타고나기를 크지 않으니 각종 후유증이 뒤따르기 마련인 온갖 성형수술이 유행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고나면 큰 것에 혈안이 되어 쫓아간다. 마치 하루살이가 불에 타죽는 줄 모르고 불꽃을 찾아가듯이 이제는 학생들조차 책도 커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텅 빈 책장을 채우기 좋고 들고 다니면서 남에게 과시하기 좋다고 한다. 심지어는 교회도 커야 인기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교회도 분명히 대형화되어가고 있다. 프로테스탄트의 예배당이 클수록 인기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정밀(靜謐)한 가운데서 하느님의 침묵의 소리를 듣고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맛보고 싶은 사람은 어디로 가야할까?
배짱도 크고 목소리도 크고 설사 집이 작으면 대문이라도 커야 하고 팁도 듬뿍 듬뿍 주고 받아야 직성이 풀리고 선물을 줄 때도 과대포장에 신경을 써야 하고.
그러나 이제 큰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님을 깨달을 때가 왔다. 오랫동안 짓밟히고 억눌려 살다 보니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온 것에 대한 분풀이라면 몰라도 사람은 분수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
「아씨시」의 프란치스꼬 성인께서는 일찌기 작은 꽃을 찬미해서 마지 않으셨고 「리지웨」의 소화(小花)데레사 성녀께서는 자신을 하느님의 작은 꽃으로 자처 하셨다. 물론 작은 것이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며、 크다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큰 것에는 거기에서 파생되는 부작용이 너무나 엄청나고 복잡하다
8ㆍ15해방 후에 미국사람들의 영향을 받다보니 큰 것이 좋은 것으로 보일수도 있었겠지만 미국사람들의 형편과 우리의 형편이 아주 다름으로、 우리는 함부로 미국사람들처럼 큰 자동차를 몰고 다니거나 물자를 낭비하면서 살수는 없다. 한편에선 내집없이 사는 사람이 그렇게도 많은데 불과 두세식구가 60평 이상이나 되는 아파트에서 산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는 것이며、 실제로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보다 인구밀도도 적고 경제대국인 일본사람들도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작은 집에서 오붓하게 사는 것을 볼 수 있다.
현대사회의 위기는 도시의 거대화와 건물의 대형화와 상관이 깊다. 『대도시는 권력집중의 상징과 동의어』라는 말이 있듯이、 대형화는 필연적으로 획일적이고 기능주의적인 것을 우리에게 강요하며 우리를 비인간화 시킨다. 우리나라의 도로 사정과 주차시설의 악조건하에서는 승용차를 사용하더라도 기름도 적게 드는 작은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경쟁심을 버리고 안식을 찾는 것이며 작은 것도 곱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지금까지 집필해주신 문순태씨에게 감사드립니다. 9월 한 달은 진교훈 교수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진교훈
(토마스 · 서울대 철학교수)
◇56년 서울대 철학과 졸업
◇72년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철학 박사학위 취득
◇저서 「철학적 인간학 연구」외 의학철학, 사회윤리에 관한 논문 다수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