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우스운 것이다.
웃음은 장벽을 헐고 또한 굳게 쌓기도 한다.
웃음은 교회의 본질과 같은 내용을 지니고 있다.
웃음은 즐거움이다. 웃음은 슬픔이다. 웃음은 저주다. 웃음은 비정상이다. 웃음은 괴로움이다. 웃음은 응답이다. 웃음은 봉사다. 웃음은 교회이다.
인간 삶 가운데 나아닌 다른 사람을 즐겁게하는 방법은 크게 나누어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얘기해보고자 하는 것은 비물질적이면서 즐거운 웃음(微笑)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교회안의 신자들은 누구보다 큰 기쁨을 가슴에 간직했던 순간(영세)이 있었고 지금도 이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성직자는 신자들에게 기쁨을 전하고 맛본다.
교회안의 이 신령한 즐거움, 티없이 맑은 기쁨이 우리들을 한 가족으로 굳게 맺으며 맺어진 인연이 교회의 신령한 힘이다. 성직자와 신자 신자와 신자 사이에 진정한 웃음이 오고 갈때 교회는 약동하고 생명이 있는 것이다. 너와 나의 웃음을 한데 모아 질서정연하게 계획된 조직으로 또는 하나의 활성분자로 교회는 사회에 나아간다.
이것을 전해줄 수 없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임을 만인간에게 증명할수 없으리라. 인간 존재가치는 봉사에 있다고 본다.
나 자신에 봉사하고 이웃에 봉사해야 한다.
이것이 없다면 자신의 존재가치는 없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때 필요치 않은 것은 만들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나의 탓으로 그리스도의 교회에 즉 창조주께 대한 예를 거스려 존재가치를 잃지않게 세심한 주의를 하여야겠다. 잘난 이나 못난 이나 남녀노소를 묻지않고 그 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여야 할 이유가 있기에 만들어진 것인데…
『단식하거나 노상에서 자거나 재(灰)를 뿌리며 끊임없이 울어보아도 그런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만일 여러분이 남에게 있어 무익한 것이라면 아무것도 중요한 일을 하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띠토서 설교참고) 그렇다. 나는 여기서 내 전부를 묻어버리고 웃음을 찾고싶다.
미소를 잃어버린 교회는 세상에서 원치 않으며 그리스도안의 안식처가 되지못하며 차라리 비웃음의 교회, 슬픔을 머금은 교회일 뿐이다.
우리 그리스도의 자녀들은 마음을 털어놓고 형제애로서 웃음의 꽃을 피우면서 이 지극히 작고 아름다운 봉사의 꽃이 이 세상에도 즐거움이 될수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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