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정상을 향한 사순절의 고행의 순례길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러 오늘도 부활의 정상에 올라서서 그 신비의 체험을 장엄한 전례와 축제로서 기쁨을 표하고 또 서로 나누려는 것이다. 이 행사적인 전례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부활의 신비를 먼저 체험할 수 있어야겠고 또 성대한 축제를 통해서 이 체험이 확고해지고 확대될 수 있어야겠다는 마음이 앞선다.
그러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부터 음미해 볼 필요를 느낀다. 그리스도의 부활 자체는 무엇을 뜻하며 자연의 세계와 인간의 역사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느님측에서 부활하신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 하느님 자신은 부활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인간을 위하고 우리와 인류의 세계와 관련지워진 것일 때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 실재와 의미의 바탕을 가지는 것이 된다.
그럼 이 관계는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부활의 교의나 신학은「육체의 개념」을 전제한다. 다소 어려운 표현이지만 육체는 우주세계에 있어 서로 접근할 수 있는「관계의 중심」이 되는 것이라고 규정지울 수 있다. 별의 세계에까지 관계를 확대시킬 수 있는 근원는 이 육체를 기점으로 하기 때문이다. 육체에 있어 우리는 주체의 개별성, 성질의 특수성, 물질로서의 우주성 세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주체는 본성의 특수성을 매개체로 해서 우주와의 관계를 이어주고인간에게 있어서는 인류의 역사와 자연과의 관계를 맺어준다. 동시에 개성 특수성 우주성 삼자가 서로짜여 개인과 인류의 역사를 형성한다. 죽음은 이것을 중단시키고 부활을 재건하고 완성에로 향하게한다. 공간속에 육체는 상호간의 질서관계를 가능케하고 일치에로 향하게도 하고 분리로 향하게 한다. 그러나「시간속의 육체」는 서서히 이 분리작용을 지양해서 일치에로 향하게된다. 론리생활에 있어 이 현상을 체험하는 바이다.
우리가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이해할때 육체적으로 분열된 인간도 일치에로 향하는 사실말이다. 죄악은 시간과 공간속에 놓여진 존재조건을 변혁시키지는 않겠지만 서로의 분열을 조장시킨다. 이러한 죄의 사실에서 확인할수 있는 것은 공간은 육체를 질서속에 자리잡게 하기보다 분렬과 무질서로 작용하고 시간은 이해와 조화보다 이해의 기회로서 작용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바오로 사도는『자연의 세계는 슬퍼한다』고 말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죄악의 세계에 있어서는 만유가 상반하고 반발한다고 볼수 있다. 서로 거부하고 서로 배제하고 개성 특수성 우주성에서 외면하게 된다. 인간세계에 분리와 분열을 존입한 것의 총체는 죄악의 산물이다. 적어도 바오로 사도의 우주관은 이러했다고 본다.
인간의 죄악을 처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인간이 고뇌에서 허덕이는 세계와는 다른세계(일치ㆍ조화ㆍ영적하는 역사의 세계)로 들어가게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동시에 우주는 모순과 상호배제를 시간과 공간안에서 없애버리고 새로운 우주로 변혁된다고 본다. 『천상천하 모든 것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부활의 신비는 우리를 영혼의 영생만을 보장해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역사속에 살고있는 인간을 인류와 자연과의 관계속에서부터 행복하게 해주는 원동력으로서 받아들여지고 또 그렇게 활력이 발휘될 수 있을때 참된 것이되고 의미가 있는 것이리라. 그리스도의 복음사상도 바로 이것이다.
「기쁜소식」으로서 인류에게 선포한 복음사상은 보존하는 인간을 행복되게 하는데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영혼만을(인간의 일면) 구원하시려는 그리스도는 아니었고 영과 육이 합한 전일적이고 실존적인 인간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가 아니었던가? 그리스도의 강생(육화)과 부활(육의 재생)은 더욱 이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대축제로 지내는 것도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와 신비를 바로 알고있기 때문이다.
이제 남는 것은 부활의 기쁨이 기쁨으로서 멈춰서는 안되겠다. 무엇인가 그리스도교인 이라면 내 생활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변혁시켜놓는 생활인이 될 때 지상생활에서 사후영생으로 통하는 생활의 증인이 되는 것이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안내하는 복음전달의 신앙인이 되리라. 그리스도의 부활의 신비를 깨닫는 모든 이를 통해 인류에게 이 기쁨이 전달되기를 축원해 마지 않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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