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속의 음성으로 보아 외국인 사제임을 알 수 있었다. 그분은 내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읍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이른 아침의 미사에 참예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읍엔 성당이 둘 있었다. 읍내에 하나,읍 변두리에 하나. 말하자면 읍내성당이 비좁고 보잘 것없어 변두리의 널직한 곳에 시원한 새 성당을 하나 더 지은 것이었다. 그래서 읍내성당은 주일이라도 일을 해야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른 아침에 미사를 올렸다. 변두리성당은 산책도 할겸, 시원한 분위기도 누릴겸 10시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나는 그 10시미사를 위해 변두리성당을 찾기로 했다. 맑은 햇살이 쨍쨍한 날 아침이었다. 정말 성당은 널직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마당엔 모래가 두텁게 깔려 있어 마치 기분좋은 양탄자의 느낌마저 주었다.
성당마당에 들어서자 수녀 두 분이 대문 양옆에 서 계셨다. 뜻하지 않게 이분들은 다소곳이 인사를 했다. 아주 반가워하는 미소를 띠며, 손이라도 덥석 잡을듯이 나를 맞아주는 것이다. 의외였다. 물론 나는 그분을 처음 만났다. 어디서 왔느냐, 얼마나 머무느냐, 신부님을 뵙겠느냐…이 수녀들은 하나하나 나직한 음성으로 물으며 반겨주었다.
그분들은 미사에 오는 다른 모든 교우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아기들은 잘 자라느냐, 지난 주일엔 왜 안 왔느냐, 할머니 병환은 좀 어떠시냐…교우들도 서로 반가워하며 그 수녀들과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사제관으로 들어갔다. 예측대로 불란서 신부였다. 거실엔 전축도, TV도, 개(犬)도, 양주도, 엽총도, 양과자도, 침대도 없었다. 철제캐비넷과 책상 하나와 이불과…그뿐이었다. 책상위엔「빠스칼」의 무슨 서한집원서가 놓여있었다. 고백을 하겠다고 말했다. 앉은 채로 실화를 나누듯이 사제는 나의 고백을 들었다. 그분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깊고 진지하게 듣고 계셨다.
미사가 시작되었다. 풍금소리가 성당안에 조용히 퍼졌다. 향기처럼-. 좌석 양옆에 큼직한 석유난로가 활활 타고 있었다.
신부님의 강론은 성당을 쩡쩡 울렸다. 그는 너무도 유창하게 한국말을 구사하고 있었다. 『사회에 살고있는 연대감, 이웃의 의미』를 말하며 이 사회에 팽배한「에고이즘」에 찬물을 끼얹는 내용이 었다.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얼마나 진지하게 말씀을 하셨던지 연방 이마의 땀을 닦았다. 아이들도 몸 하나 비틀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미사가 끝났다. 누가 오늘 사목위원회가 있다고 공지했다. 마당 사제관 옆엔 바로 사목위사무실이었다. 이 성당의 모든 운영은 그 사목위가 맡고 있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폐물이있으시면 역락해 주세요. 저희가 찾아 뵙겠습니다』성당문에 붙은 광고문 일절. 그럼직하다. 빈 가마니ㆍ빈 병ㆍ헌 옷…등이 연보로 대신되나 보다. 경북 Y읍 어느 성당의 풍경이다. 나는 실로 오랜만에 흐뭇한 주일미사를 참예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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