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변에서 의외로 용기있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인간에 대한 감동은 이때처럼 깊을 때가 없다.
용기란 무엇인가. 범인이 할 수 없는「무엇」을 자신있게 해내는 사람의 의지를 말한다. 용기라는 말(CCOURAGE)은 그 어원을 보면「심장」을 의미한다. 그렇다 심장이다.
남의 심장을 뜨겁게 해주는 것이 바로 용기다.
그 때문에 이 용기의 뒤엔 감동이 따른다.
우리 한국 가톨릭사의 금자탑을 쌓아준 순교자들의 신앙고백은 바로 그 용기이다. 아니 가톨릭의 전사는 이 용기의 역사이기도 하다. 「카타콤바」(地下敎會)에서 비롯하여 오늘의 장엄한 교회를 세우기까지 세계의 모든 가톨릭교도들은 용기로 일관했다. 우리에게 살아있는 역사의 기록이 있다면 순교자들의 피와 의지이다. 오늘의 교회가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는 원천도 여기에서 비롯한다.
우리가 주변에서 발견하는 용자들은 비단 종교의 역군들만이 아니다.
가치있는 사회의 건설에 묵묵히 헌신하는 사람들, 이 시국의 한 안녕을 걱정하는 사람들, 조국의 래일을 위해 힘차게 발언하는 사람들…누구나 여기에 포함될수 있다. 가까운 역사속에서 찾는다면 3ㆍ1운동이 그것이요, 4ㆍ19가 또한 그 예외가 아니다. 식민지의 그 숨막히는 인간이하의 상황에 항거한 사람들의 용기는 이성인이면 누구나 동정하고 이해할만 하다.
4ㆍ19도 마찬가지이다. 근원적으로 성선의 입장으로 존중하지 않는 사회나 국가는 우리의 자유의지에 위배된다. 우리는 당연히 우리가 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의 건설을 주장하고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감동에 사로잡히면서도 어딘지 공소한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무력하기 짝이없는 한국 가톨릭 신자중에 한사람임을 너무도 잘알기 때문이다.
실로 나는 단절된 역사속의 한국 가톨릭신자임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과연 우리는 근세 개화이후 이 나라의 역사발전에 무엇을 기여했는지 나는 잘 모른다.
교회내의 사학자는 개화기에 한국 가톨릭신자들이 일부일처제를 철저히 지킨 것을「역사적」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가톨릭신자가 없었던들 이 나라는 정말『「소돔」과「고모라」』반이 되었다는 말인가.
나는 그렇게 단세포적인 사고방식에 연연하기 싫다.
어느 고위성직자의 미사여구로 된 개탄도 없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 사회, 「교회 바깥의 상황」에 대해 너무도 답답하고 안타깝게도 침묵만 지키고 있는 한국 가톨릭교회만의 미덕을 이해할 수 없다.
최근에도 역시 용기있는 종교인들, 용기 있는 지식인들중엔 가톨릭 성직자는 두말할 것도 없고 신자들도 스스로 제외되었다.
또 한번 공소하고 부끄러운 생각에 잠긴다.
교회는『존재하기 위해서 있는것』은 아니다. 더불어 존재하는 것이다. 무엇과「더불어」인가. 바로심장이다. 인간의 심장을 고귀하게 순화하기 위해서이다. 하느님은 그런 심장에 찾아오신다. 우리는 그분을 모실 교회는 있어도 교회속의 심장은 없는것 같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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