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김수환 추기경께서 성명을 발표하고 이번 총선이 공명정대히,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각자 양심이 명하는바에 따라 투표되기를 호소한바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 나라에 들어온지 2백년이나 되었으나 사회문제에 관한 공식적인 성명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성명은 애당초 21일에 발표되기로 예정되었으나 사정에 의해 「무기연기」되었습니다. 많은 억측이 뒤따랐습니다. 그 숨은 이유야 어떻든 실망하지 않을수 없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23일) 중지되는 것으로 생각했던 성명이 각 라디오를 통해 방방곡곡에 전해졌습니다. 그때의 기쁨은(우리 교회가 정말로 이 세상 등불이라는 점에서)이루 말할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전일에「무기연기」한 것은 다음날(22일)에 보다 큰 기쁨과 효과를 주기위한 역할을 한 셈이 아니었습니까? 이렇게 생각할때 우리 인간사회는 모든것이 우리의 이익을 위해있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사람은 본시 상대적인 사회안에서 살고있습니다.
어지럽고 유한한 이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절대적이며 무한한 생명을 그리워 합니다. 이와같이 상대와 절대 사이에서 서로 엇갈리는 모순을 겪어가며 살아야하는 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일과 다, 동과 정, 양과 음, 정신과 육체, 생과 사, 고와 낙, 그리고 한과 망….
이렇게 이원론적으로 서로 대립하고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잘 동찰해본다면 거기에는 상반되면서도 서로 깊은 관계가 있고 둘인것 같으면서도 하나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우리들도 현실세계에 사는 자기의 모습이 얼마나 약한 것인가를 알면 가장 강한 자가 되며 무엇보다도 연약한 육체가 성신의 궁전이라는것을 알때 우리는 무한한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전쟁소설에서도 싸우는 장면만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요한 달밤의 풀벌레소리 구슬픈 가을날 오후 유유히 흐르는 강물같은 것도 나옵니다. 칼을 두르며 피비린내 나게 싸우던 영웅이 말머리를 돌려 돌아가는 길가에 피어있는 한떨기 이름없는 꽃을 보고 감상에 잠기는 것은 연애소설에 나오는 다감한 소녀때 센치보다 더욱 센치한 것이 아닙니까.
한담은 한가한 사람의 주제없이 늘어놓는 지나가는 말일지 모르나 그 속에서 얻어지는 진담은 어느 강연 석상에서 열변을 토하는 진리 못지않게 우리 가슴속을 파고들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본란을 위해 애써주신 중앙일보 월간 부장 최종율씨는10회로 집필을 끝내고 이번호부터는 가톨릭 교리연구소에 계시는 이승우씨께서 수고하시게 됩니다. 독자와 함께 최종율씨께 감사드리며 이승우씨의 건필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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