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형의 감방 그 좁은 곳에서의 나의 감방생활은 내가 처음으로 인생의 진가를 조금씩 깨달을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사형수의 권고로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게 되었고 책 속에서 인생의 길과 진리를 알수 있었으며 성경책도 3번이나 읽게 되었습니다.
미결생활 7개월 그동안 내가 읽은 책수는 무려 2백권이나 되었습니다. 그것이 모두 사형수 아저씨 덕분은 물론 항상 기도드리는 아저씨를 따라 다소 애로는 있어도 나도 같이 기도했습니다.
대통령 취임식날 사형수 아저씨는 아침식사도 않고 종일 기도드리고 있었습니다 사형에서 무기형으로 되기를… 무척도 살고 싶어하시던 그 아저씨! 난 그분이 기도드리는 것이 너무도 불쌍하고 애처로와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에겐 아무 혜택도 없었습니다. 실망하시던 그때의 그 표정 지금도 잊을수 없지만 당시 아저씨는 아무 내색도 않고 말 없이 창밖을 보고 계셨지만 속으로 억눌렀을 것입니다.
그분의 행동과 마음씨 등 아저씨를 존경하고 지내는 나의 하루 일과, 그 속에서 나는 무척 그분의 지난 날을 알고 싶었으나 괴로워하실까봐 끝내 묻지도 못하고 나 징역형은 일심 구형에 3년 징역을 받게되었습니다.
나의 죄과에 견주면 그만큼 받으리라는 생각은 했지만 왠지 자꾸만 맘이 괴로와지고 눈앞이 캄캄해지며 뭣인가 무너지는것 같았습니다.
선고받는 날 사형수 아저씨는 자기의 소지품 하나를 주면서 『이걸 가지고 나가면 운이 좋다』며 종이에 싸서 내 포켓에 넣어주었습니다.
징역 2년6개월 3년 구형에서 6개월 삭제되었지만 2년6개월을 이곳에서 살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하늘이 노래지는것 같았습니다.
나의 범행을 보면 마땅하리라고 판사는 선고했지만 난 동정을 바라며 항소를 했습니다. 항소 이유서는 사형수 아저씨가 초안을 잡아주어 그대로 써내었습니다.
항소 공판날 바로 그 사형수 아저씨 덕분에 나는 1년 삭제되어 1년 6개월을 받았습니다. 감방에 돌아와 아저씨께 말하니 그분은 마치 자기 일 마냥 좋아해 주셨습니다.
그 후 나는 미결생활 7개월만에 정든 그 감방을 떠나 머리를 깎고 기결로 넘거가게 되었습니다.
사형수 아저씨는 무척도 섭섭해 하시며 자기 세타와 내의 그리고 세면도구를 내게 주며 『난 얼마 안있으면 주님 앞에 가니 이 옷 추울때 입고 사회에 나가면 부디 새삶을 찾아 형무소에서 고생하던 생각을 해서라도 진실속에서 참되게 살아요』하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인정」비록 혈친관계는 아니었지만 혈육보다 더 깊이 정들었던 아저씨와 나는 비록 육체적 자유는 잃었어도 서로 서로 인간의 고귀한 정에 싸여 함게 울었습니다.
기결사. 이곳으로 넘어온 나는 악기를 다룰수 있다는 점에서 악대부로 출역되었습니다. 『음악을 알고 음악속에서 산다는것』이것은 내 감방생활중 조그마한 행복중에 하나였습니다. 소년원 시절 클라리넷을 불던 나, 그러나 이곳엔 클라리넷이 없어 할수 없이 엘트 색스폰을 불게 되었지만 두 악기가 구조가 같기 때문에 쉽게 배울수 있었습니다. 캄보밴드의 7인조 이곳은 모두 대인수만 있어 나이 어린 나는 항상 많은 사람들의 귀여움을 받게되어 불편없이 지냈으며 교도소에선 그대로 지성인들이 있는 곳이라 나로선 배울점이 많았고 또 부지런히 악기도 불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또한 사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기수에 나이든 30세인 박길수라는 분 교도소내 크리스찬중에 최고 중심인물로서 나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며 신앙의 길과 참된 인간이 되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의 성격과 비슷한 성격 또 자신은 무기수이면서도 내일을 생각하며 좁은 테두리에서 진실되게 산다는 것. 그분의 유일한 희망은 감형이라도 되어 무기가 유기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밀폐된 이곳 소사회, 나이 어리고 약간 밉지않게 생긴 얼굴 때문에 나는 고통없이 생활했으며 내일을 설계하며 지냈습니다. 아침에 출역하면 식사준비를 하고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악대부 10명의 밥을 타와 배식을 했습니다. 추운겨울이면 살이 떨어져 나가는것 같지만 참을 忍자 하나로 찬물에 식기를 닦고 추워서 손가락이 악기에 짝짝 붙어도 배운다는 일념속에서 열심히 불었습니다. 교도소내 위안공연 약 3달만에 1회씩 있는 이 공연에는 나도 악사의 일원으로 무대에서 나의 기술을 자랑해 보기도 하고 공연이 끝나면 사회밴드에 경험있는 분들이 극구 칭찬하며 많이 늘었다고 해주었습니다. 이런 생활속에서 예술인이 돼보겠다는 나의 마음가짐과 더불어 쉬는시간에는 악대분의 잔일은 도맡아 하며 전 악대부 사람의 빨래를 빨기도 했습니다.
옛날 범죄할 당시 그리도 빨래가 하기 싫어 한번 입은 런닝이나 팬츠를 그대로 쓰래기통에 버리던 일을 생각하면 정말 너무도 저주스럽기만한 지난날이었습니다. 일하는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이곳서 난 신용이 얼마나 중하고 필요하다는 걸 배웠고 이제 사회에 나가면 부지런히 일해서 남과 같이 떳떳하게 살겠다는 희망을 안고 하루하루 기술연마로 정성을 심어갔습니다.
이렇게 희망을 안고 그래도 뭔가 부푼 꿈이나마 가져보려는 내 피나는 노력과 인내속에 나는 어느듯 1년6개월의 형기를 다살고 또 옛날 집행유예 받은 것도 추가로 다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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