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찾아오는 손님이 많지 않은 우리집에 심심치 않게 차임벨이 울린다. 반가운 우편물 배달일때도 있고 귀찮은 월부장사난 식량이나 돈을 구걸하는 사람들도 벨을 울려 나를 불러내곤 한다. 그런가하면 정말 딱한 손님이 방문한다.
열심히 무엇인가 일하고 있을때 아니면 시간에 쫓겨 막 외출을 하려고 할때 벨이 울려 나가보면 상냥하고 정중하게 인사하면서 내 쪽에서 말할짬도 주지않고 하느님의 복음을 줄줄 외어가면서 전도를 하는것이다. 처음 당했을 때는 대문에 서서 오래 말하게 하는 것이 민망스러워서 응접실로 모셨다. 프로테스탄트교파의 사람이라고는 알고있지만 나도 예수님을 믿는 신자이고 또 그들이 아무런 보수도 없이 주를 증거하러 다니는 수고와 용기를 생각해서 열심히 들어 주었다.
그리고 간행물을 사라고 권해올 때 비로소 나도 천주교 신자라고 밝히고 돌려보내곤 했다. 그러나 그 일도 너무 자주 당하다 보니 귀찮아져서 이제 거의 대문에서 몇마디 주고 받고 돌려보낸다. 그러면서도 이럴 때의 내 마음은 착잡해진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려 아무런 세속적인 댓가없이 수고하는 그들의 호의를 내가 짓밟은 것은 아닐까. 그러나 내 쪽에서도 귀중한 시간을 빼앗기고 본의는 아니지만 내 일에 방해가 되었으니 나도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뒤적이고 있으니 작년 여름엔가 마음 아프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일본에 가 있는 친구에게서 급한 편지가 날라왔다. 자기가 맡고있는 교포학생들이 고국인 이곳 서울에 와서 여름방학동안 강습을 받고있으니 찾아보고 돌봐달라는 내용으로 그 학생들의 명단이 적혀있었다.
더위와 폭우를 무릅쓰고 면회를 갔었다. 야속할만큼 모국어를 모르는 교포학생들에게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외출이 허락되는날 우리집에서 점심식사를 대접하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래서 그 날서울거리에 익숙치 못한 그들을 위해 내가 데릴러 가기로 되어 식사준비를 알뜰히 해놓고 부지런히 그 시간을 대어 달려갔더니 8명이나 되는 학생중에 한사람도 나를 따라오겠다는 학생이 없었다. 모두 친척집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로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정말 미안한 기색이 아니었다. 「그럼 처음부터 약속을 하지 말것이지」나는 너무도 무색해서 화가 나기보다 슬펐다.
정말 순수한 내 호의가 이렇게 무참히 짓밟히다니 땀에 흠뻑젖어 돌아오면서 말할 수 없이 마음이 아펐다.
아무리 살벌한 인심이라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따뜻하고 선의에 찬 인정이 얼마든지 있다. 그것이 통하지 않고 짓밝힐때 무슨 대가나 보수를 바래서가 아니라 순수하고 고운 마음이 얼마나 아픈 상처를 입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할때 아무리 작은 선의를 감사히 받아드릴줄 알아야 하며 아울러 아무리 순수한 선의일지라도 상대방에게 부담이 되거나 피해가 되는 호의는 베풀지 않도록 마음을 써야되지 않을까 여겨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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