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전교회장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본당에서는 마치 전교회장을 종처럼 생각한다. 본당신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억울한데 본당교우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가끔 세미나가 열릴때마다 각 지방에 돌아다니게 되므로 많은 전교회장을 면대할 수 있었다. 이야기는 구체적인 실례로 들어갔다『어느때는 하두 고단해서 사무실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깜박 졸음이 왔는데 어느 교우가「전교회장이 낮잠을 자다니…할 일이 없으면 성당 마당이나 쓸 일이지…」하고 꾸중을 하더라』는 것이다. 요는『너는 교회의 돈으로 먹고 사는 교회의 한 고용인인데 왜 그렇게 사보타쥬하느냐?』라는 힐난일 게다.
양양의 어느 장군이 영내를 순회하다가 병사가 보초를 서다말고 졸고있는 것을 보고는 슬그머니 자기의 외투를 벗어서 그 병사에게 덮어주고는 그가 깨날때까지 대신보초를 섰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이 두 가지를 서로 비교해보자. 물론 비교도 되지 않을 일이다. 전자는 속이 좁은 평민이요, 후자는 도량이 넓은 장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평민과 장군의 신분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성의 문제라 여겨진다. 공의회 이후의 신학에 대해서 말할수 있는 주제는 못 돼지만 「꽁가르 신부와 지랄드 신부와의 대화」에 의해 요약한다면 『가톨릭 신자가 되기 전에 먼저 크리스챤이 돼야하며 크리스챤이 되기 이전에 우선 인간이 돼야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 같다. 요즘 비인간화니 양극화현상이니 가치의 전도니 하고들 흔히 말한다. 이 모든 것이 인간 자체가 소외당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말들이다. 우리들 신앙을 가진 자가 남보다 다른 점이 무엇일까? 성당에 나가서 미사에 참예하고 교무금을 바치며 아침 저녁으로 기도드리는 그것이 남보 다 다른일일까? 그것만으로서 신자로서의 구실을 다한 것일까? 결코 아니다. 우선 인간이 돼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알아야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존엄성은 알면서 타인의 존엄성은 알지 못한다. 결국 그는 자기만의 존엄성만 내세우다가 아주 좁은 영토안에 자신을 폐쇄시켜 버리고 만다. 그는 자신을 지옥속에 빠뜨리고 남도 함께 끌고 들어가려는 자이다. 앞에서 말한 장군은 그가 장군이기 이전에 인간이었다. 얼마나 따스한 인정이냐. 그런데 크리스챤인 우리는 왜 이런 인간적인 정을 서로 나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설령 전교회장이 교회의 한낱 고용인이라 한대도(결코 그렇지는 않다) 그런 대우를 해서야 되겠는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마테25의40참조) 교회내에서 사랑을 나누지 못하면서도 밖에 나가서는 열심한 신자노릇을 하려고 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교회내에서의 사랑을 이룩하지도 못한다면 어찌 밖에 나가 사랑을 실천할수 있겠는가? 그것은 거짓이며 위선일 수 밖에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부에 대한 사랑의 실천도 못하면서 외부에 나가서 사랑을 실천하려는 그것이 위선인지도 모르면서 위선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이 어둠에서 께어나는 것이 시급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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