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 신아의 원천인 성서가 신ㆍ구교 합동으로 공동번역되기 시작했을때 한편 교회 일치의 일환책으로 희망을 걸기도 했었지만 또 한편 신ㆍ구교간의 차이와 대립을 노골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던 중 양교회 대표들의 2년간에 걸친 노력으로 금년도 부활절을 기해 신약성서 공동번역판이 발행되었는데 2개월도 못 가서 감리교회에서는 공동번역성서에 대한 비판대회를 열었고 대한 성결교회에서는 동성서 사용을 금지하였다는 소식이 6월 13일자「주간기독교」에 개제되었다. 더구나 이 기사에서 주목할 것은 건국대학의 주영흠 교수가『공동번역성서가「제3오염」으로서 영혼의 공해와 오염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라고 말한 사실이다. 주 교수가 이와같은 발언을 하게된 것은 자신이 공동번역성서를 세밀하게 검토한 후 어휘의 빈곤ㆍ오역ㆍ삽입 ㆍ교리의 차이 등을 바탕으로 삼고 한 말이다. 그러나 이번 공동번역성서를「제3오염」으 로 단정한다는 것은 그 표현 자체가 지니고 있는 선동요소를 보아서나 동성서가 보급도 채 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할때 과격하고 성급한 처사라 하겠다. 물론 성서를 올바로 번역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직접 우리말로 말씀하시지 않은 이상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신학자와 성서학자와 신역을 위해 노력해야 할것이고 이 노력은 세상 끝날때까지 계속되어야 할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한 번역판이 나왔을때 그것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가하고 비판하는 자나 비판받는 자는 크리스챤의 사랑의 정신으로 서로서로 대해야 할것이고 잘못됨 점을 통해서 서로가 더 가까워져야 할줄 믿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번 성서번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口舌은 교회분리를 더 격화할 우려가 있고 이 口舌이 확대되어 논쟁의 대상이될 가능성도 지니고 있는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몇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신ㆍ구교를 막론하고 성서를 더 많이 읽고 성서에서 배운 예수님의 교훈과 생활을 우리 생활에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성서가 우리 크리스챤 신앙생활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히 크다. 누구든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앙화라고 바오로 사도는 말하지 않았는가? 복음성서는 크리스챤의 생활교본이 아닐 수 없고 복음성서를 한번도 읽어보지 아니한 자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야 하는 크리스챤 신앙을 가졌다 할수 없으며 복음을 실천하지 않는자 크리스챤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예를 보면 가톨릭신자들은 어쩐지 복음성서를 외면해왔으나 개신교 신자들은 복음을 애독하는 듯하다.
이번 공동번역성서 시비에도 이러한 영향이 미치고 있다. 가톨릭 측에서는 성서에 대한 지식이 너무도 빈약하기 때문에 아무런 반응이나 비판이 없고 물론 개적으로 성서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진 학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ㅡ개신교 측에서 먼저 이러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고 공동번역성서에서 드러난 결함들을 투쟁의 무기로 삼으려 해서는 안될 것이다. 크리스챤이면 어느 종파에 속하든지 성서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를 통해서 성부께로 향하고 성신으로 생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겠는가? 가톨릭 교회사를 살펴보면 과거에 개신교 성서번역을 금서로 취급한 적도 있으나 제2차「바티깐」공의회 이후 이의 잘못을 시정하고 신ㆍ구교가 공동으로 성서번역을 착수한 국가교회는 비일비재하지 않는가? 차제에 또 개신교측에서 더구나 개신교와 공동으로 번역한 신약성서를 금지한다는 것은 거의 과편협을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서 일어난 역사적인 운동은 교회일치 운동이다. 그래서 이 성서를 두고 일어나는 모든 비판은 어디까지나 신앙과 애덕에 입각한 것이라야 할 것이고 교회일치 운동에 금이 가지 않는 한도내에서 가해져야 할 것이다. 신자들의 성서읽기 운동학자들간의 연구와 토의는 장려할 것이로되 적개심의 발산은 금물로 삼아야할 것이다. 그래서 동성서를 통한 신구교간의 이해를 키워야 할것이다.
그리고 이번 공동번역성서는 어디까지나 번역물이라는 것을 잊을 수 없다. 한 개의 문학작품을 번역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은 번역을 한번이라고 해본 사람이면 잘 아는 사실이다. 성서는 더더구나 번역에 난점을 많이 가진 작품이다.
성서의 언어가 헤브레아어와 희랍어로 되어있다는 점도 있지만 성서의 언어가 현대어가 아닌 2천년 전의 언어라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성서를 올바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성서의 완전한 이해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완전한 번역도 불가능하다. 이번 공동번역성서의 역자 자신들도 이것을 최종번역판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을 줄 믿는다. 그렇다고 이번 공동번역성서를 전혀 무가치한 것으로 판정한다는 것은 남의 노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편협이 될줄 믿는다. 우리 자신이 헤브레아어나 희랍어를 모르는 이상 번역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번역을 통해서라도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랑의 정신 일치의 정신을 배울 수 있다면 그만큼 하느님의 나라는 건설될 것이다.
끝으로 가톨릭교회 신자들에게 이 기회에 요구하고 싶은 것은 성서를 더 열심히 또 많이 읽고 교리교수법도 교리서만을 이용하지 말고 성서를 이용해야겠는 점이다. 그리고 성직자들도 성서연구를 배가해서 그들의 생활이 성서의 산 증거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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