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교리교육에 대한 구상을 할 때마다 나의 어린시절이 생각난다. 수녀님들은 한결같이 천당과 지옥이 손에 잡힐듯 짜릿하게 예를 들어가면서 이야기해주었고 그럴때마다 나는 공포와 희망 전율과 행복의 극과 극을 달리며 나의 꿈을 키워왔다. 20년이 지난 지금 아동들을 대할때마다 내가 받던 교리교육이 이 아이들에게는 어떤 효과를 줄까를 생각해본다.
나는 옛날(?) 수녀님들의 이야기로 내 인격을 형성해왔고 나의 신념을 살찌워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의 어린이들은 천당과 지옥을 맴돌며 꿈을 키울 수 있을 만큼 낭만적인 환경이 없다. 현실속에서 혼란과 무질서를 맛보며 쏜살같이 헤엄을 쳐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안되는 무거운 과제를 양 어깨에 메고 태어난다.
이런 아이들에게 낭만적인 교리만으로 얼버무린다면 인생의 낙오자 양성소밖에 아무런 의의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흔히 어른들은 급격한 변화에 당황한 나머지『내 어릴때엔…』식으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심지어 본당에 있는 고등학생들조차『내 국민학교때는…』식으로 자신의 무책임을 합리화시키려고 든다.
사회는 빠른속도로 변화해가고 있으며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 사람들은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업경영가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경영방식의 도입에 혈안이 되어있고 이 경쟁에서 뒤지는 날이면 생의 낙오자가 된다는 강박관념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지난 1세기동안 인간사회에서 일어난 수많은 변화를 알고있다. 큰 변화가 있을때마다 선악의 논쟁이 뒤따랐고 시일이 지나면 결국엔 수용능력이 부족한 자가 패배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변화를 본능적(?)으로 회피하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왜 그럴까?
인간은 본질적으로 변화를 통해 발전할수 있는 존재이며 생명의 씨앗은 성장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변화가 뒤따라야 하는데 왜 내 변화에 대해 반항하게 될까? 그 원인은 모르긴 하지만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수확만을 노리는 철저한 경제원리(?)를 인생의 모든 면에 적용시키고자 하는 지나친 안일주의 때문이 아닐까? 한편 변화는 그 자체로써 불안을 낳게되며 불안감을 헤쳐타갈 용기와 저력이 없을 때 인간은 더욱 더 심하게 방항하게 된다.
변화가 한 생명의 성장과정에 필요불가결한 것이라면 변화는 하느님의 뜻이기도 하다. 이 하느님의 뜻을 살리며 생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국면을 만나야 되며 그럴때마다 인간은 고통을 체험하게 된다.
오늘날 사회로 윤리도 교회도 급속도의 변화앞에 쩔쩔매며 우선 급한대로 기존질서를 불들고 늘어져 생명을 연장하려고 한다. 얼마나 급했던지 인간이 만든 기존질서까지 신성화해 버리려고 하며 영원불변 운운하며 비명을 올리고 있다. 젊은 세대의 불만이 언제 비정상적으로 폭발을 할런지도 모르는데….
변화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신념을 한번 보다자. 『거짓말로 서로를 속이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예생활을 청산하여 묵은 인간을 벗어버렸고 새 인간으로 갈아입었기 때문입니다. 새인간은 자기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와지는 가운데 참된 지식을 얻게됩니다』(꼴로새 3장 9~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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