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처음 어떤 사람을 사귀게 될 때『당신은 어디서 삽니까?』라고 묻게 된다. 이때 「산다」는 말은 거주(居住)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거주한다)은 집 속에서만 일어나고 또한 집을 매개로해서 환경 안에서만 일어난다. 왜 남녀가 서로 사랑하면 그들만이 사는 오붓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싶어 하는가? 그 이유는 그들은 그들만의 공간 속에서 바깥 세계로부터 방해와 간섭을 받지 않으며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끼리만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집은 크든 작든、화려하든 말든、비싸든 말든、위생적이든 아니든지 간에 상관없이 우리는 내 집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평화롭게 살고 싶어 한다. 내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나의 사적인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나의 사적인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조건이다. 집이란 인간이 육체적으로 피곤할 때 다시 새롭게 원기를 회복하여 새롭게 사업에 종사할 수 있기 위해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 갈 수 있는 그러한 곳이다. 갓난아기에게 엄마의 품과 같은 곳이 집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어떤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있고『내가 쉴 집이 없다』고 말을 한다. 특히 많은 청소년들이 집밖에서、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다. 「쌩떽쥐뻬리」는 이렇게 말한바있다. 『어느 집이나 지금 다 위협받고 있다』고.
오늘날 건축-특히 대도시나 신도시의 주택단지라고 불리어지는 곳에 가보면-은 시멘트와 철근을 넣어 만든 상자를 일직선으로 나열하거나 수직으로 높이 쌓아올리는 것을 능사로 삼고 있다. 그래서 집들은 강제수용소나 포로수용소를 연상시킨다. 사무소가 들어앉은 대도시의 고층빌딩은 강철과 유리로 만든 고도의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얼어붙은 것 같은 차가움과 살벌함은 금방 사람의 목을 조를 것만 같다.
도시의 위기는 바로 건축의 위기이며 건축의 위기는 주택의 위기와 직결되어 있다. 현대 건축의 공업화는 건축을 단조롭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서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기능주의적이며 비인간적이다. 가령 고층 빌딩이나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은 익명인 채로 산다. 그들은 이웃에 대해서 무관심하며 매우 이기적이다. 도시에 사는 현대인은 소위 「도시병」으로 신음한다. 도시병이란 과도한 신경소모에 의해서 생기는 일종의 노이로제、정신착란、강박관념、생리장애와 정신신경장애로 생기는 심장병、심근경색、위궤양、알레르기、천식、편두통、습진、피부병 등이다.
정신과 의사인 로베르 아즈망(R. Hazeman)은 『가정에서 안정할 수 없는 사람은 질병 속으로 도피해 버리게 된다』고 말했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그래서 엄청난 양의 진통제、진정제、마약、알콜、담배의 소모율은 증가일로에 있고、도피 수단으로서의 도박、스프츠 관람、논쟁 등이 만연되고 있다. 그밖에 도시의 대단지에서는 신경의 긴장도가 높아지기 쉬워 청소년 범죄 등이 일어나기 쉽다.
현대의 대도시화는 바로 생태학적 위기(환경파괴)의 근본원인이다. 밀집한 주택단지에서 함부로 버리는 생활하수는 하천오염의 원흉이다. 이렇게 도시의 위기는 자연의 위기、인간의 위기、집의 위기와 상관된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집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와 자기 가족이 함께 살 집을 마련할 때、그 집을 사기도 전에 나중에 그 집을 팔 궁리를 하고、또 복덕방의 거간은 그 집을 사면 어떤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확약을 해주곤 한다. 그러서 사람들은 집이란 언제나 팔 수 있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마치 결혼을 앞 둔 남녀가 결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계산하고、또 이혼을 전제로 하고 이혼 후의 손익계산을 미리 해보는 영악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짓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집은 함부로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내 집은 내 영혼과 내 가족의 영혼이 쉬는 곳이다. 그러므로 집은 함부로 투자수단이나 교환가치가 될 수 없고 되어서는 안 된다.
누가 하느님의 성전을、교회를 팔 수 있는가? 교회는 반석 위에 지어지는 하느님의 집이다. 내 집도 내가 기도하고 내 영혼이 쉬는 곳이다. 그러므로 내 집은 함부로 팔수가 없다. 옛날부터 우리의 조상들은 이렇게 말했다. 『집 판돈으로 장사해서 망하지 않은 놈 없다』고. 가톨릭 신자는 투기꾼、특히 집투기꾼이 될 수는 없다.
유럽에 가보면 시골이건 도시건 이름난 학자나 예술가가 태어난 집이나 살던 집은 영구보존한다. 심지어 베토벤이나 슈바이처가 몇 달 산 적이 있는 집도 동판을 붙여두고 기념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길바닥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도시병에 걸린 사람들、부랑자들에게 편히 쉴 곳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교회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피곤에 지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안식처가 될 수 있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의 건축부터 근본적인 반성이 있어야 한다. 참으로 우리의 교회는 고요하게 기도할 수 있는 집인가?
우리는 성심성의를 다하여 우리교회를 지었으며 짓고 있는가? 우리 교회는 평화의 분위기、포근함과 아늑함이 깃드는 곳인가? 교회는 합리성보다는 안락감과 친밀감을、특히 영속성의 요소를 지녀야 한다. 교회는 우리들의 집들의 모범이어야 한다. 그런데 생떽쥐뻬리가『어느집이나 다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을 때 우리교회도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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