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7일부터 27일까지 「전자문화와 젊은이 교육」을 주제로 개최된 세미나는 오늘한국교회의 사명 이행에 중요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초청 연사인 프랑스 리용 종교 시청각 연구소장이자 국제영화 연구원인 삐에르 바뱅 신부는 전자기술이 낳은 전자 미디어는 삽시간에 전세계에 새 문화를 형성시켰고 이 전자 미디어에 의한 전자문화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창출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문화형성의 치명적인 요소는 인구폭발이나 어떤 물리적인 환경이 아니라 상징적인 환경, 즉 비디오ㆍ오디오 환경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전자문화권의 오늘의 사회에서 이 시대 사람들의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교회는 특히 이 시대 표지에 민감해야 한다고 본다. 그 이유는 교회는 소중한 진리를 온세상 사람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전파할 사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서로 다른 방법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해왔다. 기원전 6백년부터 희랍권에서는 표음문자(노리적인 언어)를 통해 복음을 전파했고, 중세기에 접어들면서는 구텐베르그의 이동식 인쇄기 덕분에 가속으로 문자문화가 이루어져 교회는 그 후 오늘날까지 거의 6백 년 동안 문자ㆍ서적으로 교의를 가르쳐왔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TV가 들어오고, 전화ㆍ라디오ㆍ컴퓨터ㆍ팩시밀리 그리고 요즘 와서 CㆍD(콤팩트디스크)등이 우리 집안에 들어오면서 사회환경에 변화를 초래했다.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은 기성체대와 근본적으로 다르게 보이고 그들을 아끼는 기성세대는 『왜 저 아이가? … 』하고 걱정한다.
「전자인간」은 스스로 보고 느끼고 체험한 사실만을(FACTISM) 진리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기성 문자세대와는 전혀 달리 이들은 감성 지향적이다. 그리고 지금 세계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동시에 알고 사는, 인류역사에 없는 새로운 때를 살고 있는 이들은 가속화의 정보에 의해 항상 「현재」만을 살아가고 있다.
오늘의 영상시대가 새로운 전자문화에서 기인되고 새로운 미디어 창출과 그 확산에서 잉태됐다면 오늘의 문화는 문자문화의 연속도 아니고 더욱이 그 한부속물도 아니기 때문에 흔히들 말하는 과도기적 현상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문자세대의 전통이나 윤리적 가치기준이나 고정관념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전자세대의 가치기준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서로가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오늘의 인간구원이 교회의 목적이라면 오늘의 「인간」데 대한 「이해력의 재편성」은 시급하다고 본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인간 두뇌의 좌반구ㆍ우반구 뇌의 기능을 전자인간과 문자인간의 사고방식과 행동경향에서 비교한 바뱅 신부의 관찰은 대단히 흥미롭다.
직선적ㆍ사변적ㆍ지배적ㆍ수학적인 좌반구 뇌의 기능은 그리이스문화ㆍ문자문화를 꽃피워 주었다면 직감적ㆍ감상적ㆍ수용적ㆍ예술적인 우반구 뇌는 전자매체로 인해 처음으로 몸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시공을 마련해 주었다.
교회역사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교회는 좌반구 뇌, 즉 지성에 호소하는 교리지식의 가르침에 치중했다. 이제 느낌이나 체험을 소중히 여기는 세대, 전자세대에게는 기존의 방법으로는 가르침이 어렵게 된다. 「충만히 살아있는 인가」살아계신 하느님에 대한 체험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우반구 뇌에 호소하는 새로운 방법이 제시되어야 한다.
얼마 전 젊은이 성찬제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통일은 결국 화해와 일치를 통해서만 참으로 성취될 수 있으며 남과 북이 서로 동족으로 받아주고 형제로 껴안아 주어야한다』고 했다. 이 말씀 역시 뇌의 기능에서 보면 분명히 우반구 뇌에 호소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성 지향적인 인간에게는 화해나 일치가 개념으로서 정의를 내리고 말게 된다.
반면 감성 지향적인 인간에게는 그 단어들이 단어로 남지 않고 그것을 몸으로 느끼고 체험하고자 한다. 때문에 복음적 회심은 오늘 전자세대에 더 호기를 맞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바뱅 신부는 오늘의 세계는 수많은 지도자가 있지만 정신적 지도자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어제의 교회는 서적으로, 강론으로 하느님의 진리를 가르쳐 왔다. 오늘날 전자인간에게는 예수님처럼 『와서보라』고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방법이다.
교회 지도자가 스스로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한 「그 하느님」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피교육자들 역시 몸으로 느끼고 체험 할 수 없다. 하느님을 깊이 살고 있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서 『깨달음』을 지니지 못한다면 어떤 달변가의 말도 이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온 것이다.
『이는 내 몸, 너희는 받아먹으라』고 선포하지만 그들은 먹지 않을 것이다. 「깨달은 자」만이 먹힌다. 교회가 먹힐 때 오늘 전자문화권의 교회는 맡은바 사명을 충만히 이룩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교회의 시급한 깨달음과 함께 전자문화권 속에서의 새로운 사목대책이 수립돼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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