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고 고된 일과를 마친 저녁이나 큰 행사를 치르고 난 뒤에는 항상 허탈감이 나를 엄습해온다. 허탈감에 사로 잡혀서 앞날을 구상할 때면 의례 비극적 부정적인 생각이 뒤따를 뿐이다. 혹자는 말하기를『젊음을 밑천으로 정신없이 뛰는 그 자체가 인생의 최고 보람이다』고 귀띔해준 일이 있다. 그러나 나는 정신없이 설치고 난 다음에 어김없이 나를 엄습하는 어둠의 사자가 두려워 그냥 무작정 인생의 보람을 입벌리고 기다리기가 싫어진다. 생을 즐기기 위한 방법과 내 주위에서 삻을 즐길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소재를 찾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강박관념에 눌려있다. 내가 너무나 나이에 걸맞지 않게 늙어 들어가서 그런가? 여하간에 나는 삶을 즐기고 싶다. 허무에다 자신을 맡겨버리는 자살자의 단순한 결단보다는 더 바람직한 삶의 가치를 찾고싶은 바램속에서 나를 엮어왔다.
데이비드 오네일(DAVID P. ONEIL)은 삶의 즐거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을 너무 경건하게 보기때문에 사랑이란 것이 찬미의 노래를 저절로 흘러나오게 하는것이며 저절로 웃을수 있는 소재란 사실을 흔히 잊어버리기 쉽다. 또한 우리는 신앙을 너무나 법률화해버리기 때문에 신앙이란 우리가 허약해졌을 때 부담없이 우리를 맡길 수 있는 지극히 소박한 삶의 원리란 사실을 잊어버리기 쉽다. 』나는 이런 단순한 즐거움의 원리를 최근에 네 살 먹은 조카와 해변가에 놀러갔을때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아이는 거대한 파도가 쓰러져 밀려와 마지막으로 발끝에 미치는 곳에서 내 손을 잡고 서서는 티없이 즐겁게 파도소리와 햇빛과 물결치는 파도를 보면서 크게 웃곤했다.
그 아이는 삶 그 자체가 삶이 그에게 마련해준 모든 즐거움의 가능성-즉 파도결을 따라 철벅걷는 즐거움, 젖은 모래로 집을 짓는 즐거움, 조류에 따라 표류목이 이루는 변화무상한 형태 등등을 사랑하여 즐기고 있었다.
물론 오네일이 구차스럽고 무사한 일주의적인 태도로 삶을 즐기려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저절로 우러나는 생의 즐거움을 억압해버리고 즐거움을 인위적인 공식에서 느끼려는 사람들의 습성을 깨우쳐주려는 것이리라….
가브리엘 마르셀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하고있다.
『사랑을 느낄 때에는 막연한 느낌 중에서 사랑을 맛볼 수 있지만 우리들 사이의 사랑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분석해서 나오는 결론은 이미 사랑 그 자체는 아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기의 삶 전체의 내용을 일일이 보편적인 공식에 맞추어서 누구에게나 설명할 수 있는 보람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은 언제나 허탈감 뿐이다.
삶 자체를 즐기며 나의 삶 주위에 있는 모든 가능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때 우리는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하겠다.
우리가 허탈감에서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이 우리 마음 속에서 대답하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우리의 신앙은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닐까? 나의 신앙이 이기적인 것인가? 아니면 나의 신앙이 감정에 너무 치우친 것이 아닐까? 등등을 생각할 때엔 벌써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 밖으로 멀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도 일의 성격과 비중, 그 일의 가치의 효과에 대해 성급하게 따지러 들며 그 계산에서 삶의 보람을 찾으려 하고 있다. 한편 일을 해나가는 동안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무수한 즐거움의 순간을 외면해 버리고 있다. 우리가 즐거움의 순간을 놓쳐버리는 그만큼 우리는 삶의 보람을 잃게 되는 것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가능성을 즐길때 우리의 삶은 살찌게 된다.
우리가 이런 즐거움의 원리를 삶에 적용못하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심술 때문인지 인간이 우직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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