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가난한 자는 진복자로다』(루까 6장20절) 제2차「바티깐」공의회 이후 교회는 자신의 가난한 모습을 찾기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프랑스의 도미니꼬회 꽁갈 신부가 쓴「가난하고 봉사하는 교회」라는 책자가 환영을 받아 많은 독자를 얻었다는 것도 뜻있는 일이었다.
지금은 무더운 여름철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좋은 계절이라고 한다.
정말 살기 좋아서가 아니라 겨울에 비겨 입을 걱정 덮을 걱정을 덜해도 살수 있다는 비꼬는 표현이다.
계절의 변화에 구애되지 않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픈 욕망은 인간의 기본욕구이다. 그러나 가난은 이런 기본욕구마저 외면하면서 인간의 생활속에 군림하여 인간을 괴롭히고 있지 않는가.
기독교 사상의 특징은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에 못지않게 특별한 것은 가난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교회는 수세기 동안의 역사를 통해 여러번 가난의 모습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거듭해왔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본연의 가르침을 잠시라도 망각할때 권세욕 명예욕 재물욕의 노예가 되었고 또 타락하였다. 그때마다 교회를 쇄신하는 노력은 가난을 찾음으로써 이루어지곤 하였던 것이다. 「아씨시」의 성프란치스꼬의 업적은 교회에 가난을 재발견케 해준 그것이 아닌가? 그러기에 20세기의 교회쇄신도 가난을 재발견하는 노력으로서 이뤄지리라.
이러한 사실은 우리 한국교회에 있어서 더욱 절실하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가 가난해지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데 있는 것 같다. 가난해지기 위해서 교회는 성당 학교 병원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교회란 규명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우리는 한국교회의 현황을 감안하여 다음 세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①가난한 교회란 가난한 자들의 교회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성직자들과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은 모두가 가난해지도록 노력하고 겸손의 덕을 닦도록 노력하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 교회내의 풍조를 관찰해보면 가톨릭신자의 인격가치 판단의 기준은 겸손이나 신앙보다 능력과 재력을 기준으로 하는 일이 많은 것을 목격한다.
이러한 풍조는 비단 성직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신자들도 대다수가 그렇다. 그래서 권세나 재산이 있는 신자들은 대우를 받고 가난한 자들은 천대받는 사례를 가끔 보고있지 않는가? 권세와 재산있는 신자를 천대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인간적 대우를 소홀히 하지 말자는 것이다.
②둘째로 가난한 교회란 가난한 자들이 마음놓고 접근할 수 있는 교회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물질적으로 가난해야 한다는 문제와는 다르다. 교회가 물질적으로 부유해도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는가 하면 교회가 가난해도 교회는 가난한 자들로부터 거리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교회란 정신자세 문제가 된다. 우리 신자들이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더 큰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인격을 존중해주며 그들에게 마음의 문을 개방하고 그들이 교회내에서 소외감을 받지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약자들은 마음의 문이 닫혀있는 자를 회피한다.
신앙은 하느님께 자기 마음을 바치는 것이라면 가난한 자들에게 마음을 거부하는 거짓 신앙이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교회는 신앙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경영하는 사회기업체와 같은것이 돼버릴 것이다.
③가난한 교회란 셋째로 가난한 자와 약자의 대변인이 되는 교회를 뜻할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사정으로 보아서 가난한 자들은 발언권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귀가 없는 군중에게 귀가 되어주고 눈이 없는 군중을 위해 눈이 되어주며 입이 없는 군중에게 입이 되어주는 교회,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교회의 사명이 아닌가 한다. 자기자신의 보호와 이해관계와 발전만을 추구하는 교회는 이 사명을 완수하기 어렵다. 약자의 대변자가 되기위해서는 지혜와 용기도 필요하지만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신앙심이 무엇보다도 강해야하는 것이다.
비굴하고 겁많은 자로 구성된 교회를 이 사회는 필요하지 않으며 언젠가는 사회밖으로 쫓아내고 말것이다.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해서 교회가 세속적인 의미에서 가난할 수 없다. 그러나 교회는 가난하고자 하는 노력을 가져야 한다. 더구나 완전히 가난한 교회란 이 지상에서는 이룩할수 없는 것이다. 가난한 교회는 교회생활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노력이 바로 교회의 신앙생활이다. 원컨데 우리 가톨릭 신자들중에 참으로 복음적 가난을 실천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속출해서 생활로서 가난한 교회를 증명해 주어야 겠다. 교회는 우리 신자 한사람 한사람이 모여서 하느님의 뜻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생활하는 단체라는 것을 다시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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