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부터 계산성 없는 살림살이형이라고 부모님들로부터 꾸중을 들은적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나는 신부가 되었다. 그래서 안심하고 세상을 살아가려는데 이것도 마음대로 안되는 모양이다. 신부로서 쓰는 돈도 항과 목을 세밀하게 구별해야 되는가 보다.
『눈 뜨고도 코 베어가는 세상』이란 한마디 말로써 신부도 계산이 밝아야 존경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예언이 남득이간다. 누구나 수긍하는 말마디 이기에(실은 교리반에 다니는 국민학교 4학년 아동에게 물어봐도 그 말의 뜻을 실감하고 있었다)-나도 세상의 원리에 순응해 보아야 되겠다는 심정으로 최근에 돼지저금통을 하나 마련했다.
내가 산 돼지저금통의 인상은 첫눈에 풍기는 인상부터 부해형이다. 눈썹이 위로째진듯 하면서도 굵게 퍼져 내려간 것이라든지 탐스럽게 돋아난 두 콧구멍이라든지 알맞게 내려딛은 앞발톱하며 젊잖게 꾸려놓은 엉덩이품이 마다해도 돈이 굴러들어올 상판대기다. 나는 내가 산 저금통을 책상위에 놓고 어쩐지 뿌듯한 심정을 누를길 없어 두시간을 보냈다.
다음날부터 그 흔하디 흔한 동전이 내 주위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책상 위 책상설합 바지주머니 수단 주머니 할것 없이 내 눈에 띄는 동전은 에누리 없이 돼지가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동전이 귀해지기 시작하자 나는 동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느때같으면 웃는 얼굴로 내리던 택시도 운전사와 실랑이를 벌이면서 동전을 만들어 내기위해 애쓰곤했다. 심지어는 주일헌금을 셀 때 아래층에서 나는 동전소리마저 아름다운 음으로 변하기까지 한다.
동전에 내 희망을 걸기가 어려워지자 나는 백원짜리마저 무자비하게 돼지먹이로 바치기 시작했다. 내 기억을 더음어 볼 때 나는 5백원짜리까지 돼지에게 바친적이 두번 있었다. 돼지는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하루는 술에 얼큰하게 되어 내방에 들어오자 돼지가 반갑다고 꼬리를 쳤다.
수없이 많은 가구들 중에 돼지가 내 눈에 유독 드러났는지도 모른다. 여하간에 그날따라 돼지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는 기억만이 내 머리를 스치고있다. 평소에는 매력이 없던 돼지의 볼품없는 꼬리가 왜 그런지 사랑스러웠다. 나는 돼지를 끌어안고 소리쳤다. 오! 나의 것아! 너만은 배반없는 나의 소유물이다 !돼지의 미소는 나를 안온한 꿈나라로 유인해 들어갔다. 나는 포근한 잠속에 빠져버렸다. 돼지를 끌어안은채…. 다음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이틀동안 밀린(?) 경본을 보며 돼지를 쳐다보니 왜 그런지 징그러운 인상이 풍겼다. 경본을 보던 손을 내려놓고 나는 돼지에게 속삭였다. 『돼지야! 너는 나를 위해 살고 있는거니? 아니면 나까지 잡아먹으려고 하는거니?』
돼지는 대답없이 미소를 머금으며 내게 말했다. 『이 바보야 내 뒤에 달린 꼬리를 네가 본적이 있단 말이지? 나도 나쁜놈은 아니야. 단지 내 뱃속에서 돈소리가 날 때 네가 미쳤을 따름이야. 나는 이성이 없는 존재야! 네가 보는대로 내 모습은 바뀌고 있어! 넌 어제 술김에 나를 귀엽게 봤을 뿐이야! 난 아무리 배가 불러도 그 배는 네가 마음대로 요리할수 있을거야! 그래두 내 뒤에 꼬리가 달려있니?』
그후로부터 돼지저금통의 꼬리가 없어졌다. 그뿐아니라 돼지의 배도 점점 홀쭉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필요할때마다 돼지의 목덜미를 비집고 내가 필요한대로 돈을 꺼내기 시작했다. 중학생들이 울상이 되어 달려올 때도 돼지는 희생을 당해야만 했다.
나는 얼마전부터 정신없이 뇌까리기 시작했다.
『돼지야! 너는 나를 위해 사는구나! 나는 네가 살찌는 것을 두려워했는데 결국은 너는 나를 위해 살찌고 있구나! 내가 원할 때마다 나는 너의 목덜미를 잡아째겠다. 그래도 너는 미소짓겠니?』
돼지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나는 행복했다. 가장 무섭다고들 하는 돈의 위력을 정복했다는 만족감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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