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점심시간때 약 한시간동안 대학생 40여 명이 서울 주교좌성당과 주교관 앞에서「데모」를 하고 대한가톨릭학생 서울대교구 연합회 명의로 5매로 된「천주교 서울대교구 당국에 드리는 공개성명」이라는 유인물을 배부했다.
프랑스에서 1968년 5월 학생들이「데모」이후로 세계사조는 기성제도에 대한 반항의 태도로 흐르고 있고 우리나라의 일반대학생들이「데모」하는 것은 우리는 자주 보게된다. 그러나 우리 한국 가톨릭교회내에서 대학생들이「데모」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안다.
수천명의 서울 가톨릭대학생 중에 불과 40명의 소수가 한 짓이라고 묵과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교회에 미칠 영향을 생각할 때 경시할 수 없는 사건으로 사료된다. 하여튼 가톨릭대학생들이 주교관에 와서「데모」했다는 것은 교회를 위해서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로부터 사랑을 배우고 십자가의 희생을 배운 가톨릭신자들이 모인 교회내에서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서「데모」를 해야 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고 앞으로는 절대로 있어서 안될 일이다. 아무리 정당한 이유를 가졌다 해도 비록 진리를 가졌다 해도 항거하고 농성하는 태도는 우리교회에 심어지지 않아야 하겠다.
이유가 정당하다고 어찌 가톨릭학생들이 주교관에 와서 플래카아드를 들고「데모」를 할 수 있을까. 세속이 한다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원칙은 있을 수 없다. 가톨릭교회를 속화하는 행동을 일부러 취할 수는 없다. 세속이 하는 것을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자는 것을 가톨릭학생 운동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가톨릭학생 운동의 목적은 신앙을 깊이하고 이 신앙을 생활화하는데 있다고 본다. 즉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는 것이다. 하기방학 동안에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가톨릭 대학생들이 농성하면서까지 봉사활동의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심정은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봉사하기 전에 봉사봉사의 목적부터 재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사랑의 실천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겠다.
그러면 이번 공개성명 자체를 검토해 보자. 여기에는 서울대교구 당국에 대한 다섯가지의 규탄과 다섯가지의 요구가 실려 있다. 규탄사항에 있어서 첫째와 셋째와 다섯째가 김철규 서울대교구 총대리에게 관한 것이고 둘째는 성물전시회때 관계된 몇몇 신부에게 또 넷째는 재정담당 신부에게 관계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규탄의 내용에 관해서는 견해차도 있겠고 주관의 작용도 있겠기에 시시비비를 가리기 힘들 것 같다.
그러나 객관적 입장에서 그 내용들이 상당히 모호하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객관성을 잃을 수 있다는 원인은 성명서가 너무 감정적으로 작성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공개성명 속에 어떤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을 엿보게 했다는 것은 방법상 졸렬하다고 느껴지며 심지어는 김철규 총대리의 사표를 요구하는「데모」처럼 느끼게 한다는 것은「데모」의 초점을 불순하게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요구사항에 있어서『교구 행정담당자들은 이상 제기한 문제들에 대한 총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라』는 말은 교회에 대한 인식이 그릇돼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교회는 일반 사회단체와는 다르다. 교회를 일반 사회단체와 동일시한다는 것은 우리 신앙 자체가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몇몇 신자들이 모여서「데모」했다고 행정담당자들이 총사퇴해야 한다면 앞으로의 교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교회가 존재하는 원칙은 어떤 이해관계의 균제분배도 아니고 집회원들의 대수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존재원칙이다.
그러기에 서로의 직무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있고 타인의 직무완수를 탓하기 전에 자기의 의무를 완수해야 할 것이다.
각자가 자기 의무를 완수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을 최고로 발휘하는 그곳에는「데모」할 기회가 생길리 만무한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7·11사건」의 책임이 대학생에게만 있다할수 없다.
가톨릭신자는 누구나 일각의 책임을 져야하고 또 반성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특히 이번 사건은 성직자들에게 새로운 각성을 촉구하는 동기를 제공하였다. 특히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성직자들이 갖는 위치가 대단히 크다.
그래서 성직자들의 표양은 신앙생활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비록 가톨릭 대학생의 요구사항에 과장이 있다 하더라도『성직자간에 만연되고 있는 상호불신감, 파벌조성 등…』하는 말은 성직자들에게 심각한 비난이 아닐수 없다. 이러한 비난을 받고 누가 비난하던가, 비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전에 자신들의 생활을 반성해야 한다. 자아반성이 없는 성직자들은 벌써 그 자신의 사명을 소홀히 하는 증거가 된다는 것을잊지말아야 한다.
끝으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서울대교구 당국과 가톨릭학생들 간에 새로운 유대관계를 맺음으로 학생들의 신앙향상은 물론 교회 내에서 젊은이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명백히 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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