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떠나온 옛 일터가 되어버린 A사 근무의 어느날이었다. 아니 그때 가장 무료하면서도 좋은 것은 점심시간이었다 왜냐하면 A사는 A수도원 경영이므로 그 종사자의 대부분이 수도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외부인이며 거의 유일의 여자이다시피한 나는 점심시간이면 언제나 외톨박이었다. 그러나 난 그 점심시간을 줄곧 감사해 왔었다.
수도원 뒤에는 A수도원 소유의 숲이 있었다. 그것도 내가 못내 반하도록 참 좋은 숲이-.
내 어린 시절의 집안환경 또한 목가적이었다. 그리고 지나온 것은 보다 아름답게 기억되는 법인 데도, 흰 오리들이 떼지어 헤엄치는 늪물이 있고 십여개의 꿀벌 통이 그리고 철따라 갖가지 꽃들이 우거진 어린시절의 그 집도 지금의 A수도원 뒷숲보다는 더 좋았었다는 느낌은 없을 정도였으니까…내 마음을 가장 끈 것은 숲의 양쪽 등성이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와 그 골짜기를 다리 놓은듯 어떤 연결선 위에 우뚝서 계시는「루르드」의 성모상, 그리고 숲기슭 언덕바지 위 두어그루 소나무 아래 동화적인 풍경으로 서 있는 양우리였다. 아니 이곳 저곳에 방긋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새파란 이끼 산미나리돌냉이 등을 찾아 여기저기를 거닐며 마치 고향에라도 돌아간듯한 자세로 심호흡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기쁨이었던가?
그래 떠나오기 전의 그 어느날도 그 모든 것을 가득내 작은 뇌리속에 담아서 온 고장, 앞으로 쓸 작품「동화」의 소재를 찾기위한 불순성이 겉돌이긴 했지만 숲의 구석구석을 헤매고 있었다. 그래 씨앗이 튕겨나간 오랑캐꽃 포기 사이로 쉴새없이 넘나드는 개미, 나를 보고 자꾸만 뭐라고 메메거리는, 폭 껴안아 주고싶은 아기양과 얼마동안을 벗한 나의 다음 발길은 어느새 옆쪽 여자수도원의 경계로 들어서고 있었다.
마가렛트, 들국화가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있었다. 그것들의 얼마를 꺾어든 나는 반사적으로 어떤 소나무 위를 쳐다보게 되었다. 그러고는 놀랐다. 아니 비둘기집도 아니면서? 물론 비둘기집일리가 없었다. 다만 두 판자 조각을 비스듬히 맞대놓은 그 무엇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어느분의 얼굴이 새겨진, 또 하나의 판자조각이 잇닿아져 있었는데-아아 그것은 가시관을 쓰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오솔길을 따라 자꾸만 깊숙이 들어가는 나의 시야엔 제2의 제3의 그 판자지붕들을 불안은 소나무가지들이 자꾸만 나타났다. 그 지붕마다엔 이미 오랜 비바람에 형태마저 알 수 없는 성화들이 간직된….그것은 말할나위도 없이「갈바리아」의 오르막길을 표상하는 성로 14처였었다.
그래 맨 처음에 발견했던 그 판각화 앞으로 되돌아온 나는 다시금 우러러보면서 내 상상의 나래를 다음처럼 펼쳤다.
-어느 손길인지 몰라도 그 고운 마음씨! 어느날 산책차 기도하러 왔다가 이 자리의 상본이 떨어져 나간걸 보고 이것을 새겼나봐-
그 마음결, 그 손길의 주인공이 어느 수녀님인지 끝내 알바가 없었으며 아니 구태여 알 필요가 없었다.
다만 이 세상으로부터 숨겨진 어느곳에 어떤 하나의 아름다움이 잠재해 있다는것만을 알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정녕 이 세상엔 허구많이 드러내진 아름다움과 더러움이 있다. 반면에 숨겨진 더러움과 아름다움이…. 따라서 그날 내가 뜻밖에 발견한 숲속의 그 아름다움마다에 목례를 보내면서 내 나름대로의 어떤 상념에 잠겼었다.
그러고는 며칠이 안되어 난 A수도원으로부터의 퇴직과 더불어 세속이라는 내 생활의 본향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비록 일을 하지 않으므로 어느분의 표현처럼-우주관리의 일역에서 벗어난 멍청함 속에서 나마 우선은 내가 택한 휴식을 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숲길에도 우수수 낙엽이 휘몰아칠 이 계절에 서서, 아니 거세게 불어대는 저 바람결에 A수도원 뒷산의 그 판자지붕의 안위가 조금은 궁금해지는 마음이곤 한다.
黃允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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