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전에 일본「도교」에서 열린 PEN 대회때 거기「가톨릭 저널리스트 클럽」의 주선으로 각국에서 모인 가톨릭 작가들의 교관이 있었다.
서로 자기나라 교세나 교회 무화활동 등의 소개를 마친뒤 여담으로 들어갔는데 일본의 여류작가 하나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의 우리 일본교회는 인간의 모범생만을 받아들이려고 해서 탈이예요. 복음의 정신은 오히려 죄있는 자 허물있는 자의 편인데 말이지요. 가령 예를 들면 제 친구 하나가 피치못할 사정으로「銀座」(동경의 번화가)에서 술집을 경영하게 되었는데 본당 신부님의 꾸중도 꾸중이려니와 교우들의 삐죽어림과 따돌려놓음 때문에 결국 성당엘 못나오게 되었답니다.
예수께서는 창녀 막달레나를 그렇듯 용납하시고 사랑하셨는데 말입니다』
화제가 이쯤 나오자 성당 흉보기는 동서가 모두가 공통된 취미(?)인 모양이어서 제각기 한마디식 내놓다가 마침내는 그「銀座」의 여교우 술집으로 가서 그녀를 위로하자는 공론이 되었다. 나도 그런 객기에는 누구 못지않은 사람이라 따라 나섰는데 그 술집에 가서 들은 술만 진탕 어울려 마셨지만 나올 때 그 여주인이 눈물이 글성하여 고마워하던 것을 보면 역시 위로가 되긴 된 셈이다.
얘긴 달라지지만 지지난주일 서울집 근처인 S동 성당 아침미사에 가니 미사는 늦었는데 성당 사무실에서 몇분이 손을 잡아 끌어들여서는 커피를 권했다. 그분들은 이것이 매주마다의 정례의 모임으로 여기서 성당의 원활한 운영 교회행사의 기획, 또 교리문제의 토론 등을 격식없이 행한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이 모임을 확대시켜 미사 후마다 본당 모든 교우들의 친목시간을 가질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오늘날 교우들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무엇이며 이것을 헐어버릴 방법은 무엇이겠느냐 하는 난 문제를 던져왔다.
나는 이 아침 이런 즐거운 자리에 얻어걸린 흥그러움도 있고해서 평소 내가 품고있던 생각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제가 느끼는 것을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우리 교우들이 교회에 와서는 서로가 너무「선의 허세」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사람이란 미덕이나 장점만 가지고 사과는 것은 어렵고 또 그 우애가 잘 깊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함이나 단점, 즉 허물을 서로 툭털어 내놓고 사귈 때 경계심도 없어지고 서로의 진면목도 알게되고 측은지심도 생겨서 진정한 우애가 발동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성당에서는 서로 선냥하고 체면차리고 미덕과 선행만 경쟁하듯 발휘하자니 사람이 숨이차고 피곤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까 교회안에서는 자연히 최소한의 자기 본분만 하고 돌아서고 실생활은 교회밖에서 비신자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알고 또 그렇게들 행하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이건 저부터가 거의 철칙이 되어있습니다. 이 그릇된 교회관을 벗어나고 부셔버리기 위해서는 성직자나 신자들의 근본적인 자세 전환이 필요하고 교회속에서 협동하고 사는 것이 한 집안처럼 즐겁고 실생활에도 유익유리하다는 실감을 맛보게 해야 될 줄 압니다』
이것은 그날 나의 미익한 이야기를 보충해서 적은 것이다.
▲이번호부터는 시인 구상씨께서 본란을 맡아주시겠습니다.(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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