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기억지는 못하나 헬만 헷세의 서간집에『나는 어떤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식견이나 행동거지보다도 그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내면의 빛에서 그를 판단한다』고 적혀있었다.
내가 왜 이런 소리를 꺼내는고 하니 요즈음 거리에 나서면 우리 여성들의 몸맵시나 치례가 놀라울 정도로 좋아지고 말숙해졌는데 이것이 외형에만 치우쳐서 각기 제마다의 빛이라곤 좀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좀 실례된 표현이지만 특히 젊은여성은 그녀가 주부인지 여학생인지 여사무원인지 술집 호스테스인지 식모인지 구별이 안간다. 이것을 계층적인 측면에서 차라리 민주화되고 잘됐다고 한다면 할말이 없으나 솔직히 말해 이렇듯 오늘의 우리 여성들이 개성미는 고사하고 교양미도 잃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결국 젊은 여성자신들이 여성미를 미인 콘테스트에 나갈 균형미로 목표삼고 그 접근을 위하여 정형을 비롯해 온갖 수단을 다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저피테도그의「파우스트」에서 절세미인 헬레나를
『수없이 찬미받고 수없이 헐뜯긴 헬레나』라고 하였듯이 누구에게나 손쉽게 아름다운 것은 참된 미가 아님을 말해준다.
결국미란 그 자체에 있어서는 발견에 있어서나 수용에 있어서나 개성적인 것이다. 저 니콜라의 할트맨은 미의 발견에 있어『사랑하는 사람만이 눈뜬 사람이다』라고 창파한다. 우리속담에도『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고 또 그 미의 수용에 있어서도『곰보자국 구멍마다 정이 푹푹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그 개성적인 미의 외형을 살리고 죽이는 것은 바로 그 내면여하에 달려있다. 즉 어떤 한 사람의 같은 얼굴이라도 그 사람 그때그때의 심기와 희로애락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그렇듯 어떠한 사람의 진정한 개성미는 그 사람의 지성과 덕성의 총화로서 이루어지고 발휘된다.
얻어들은 풍월이지만 불교의 포시행에는 전시라는게 있다고 들었다. 남에게 베풀 힘도 없고 물질도 없는 사람이 평화한 얼굴, 자비스러운 얼굴을 함으로써 남의 마음을 화평하게 하고 즐겁게함으로써 베품을 삼는다는 얘기다. 이렇게되면 전신이 구전하거나 앉은뱅이 같은 불구라도 문제가 안되며 내면미의 극치로서 우리 신앙인들이 발휘하고 도달해야할 미의 완성을 시사해 준다. 이제 이로를 중단하고 나의 소망을 한마디로 말하면『보석이나 화장이나 채림의 찬란보다도 제 빛을 가지고 다니는 여성들을 만나고 싶은』것이다. 아니 이것은 어쩌면 오늘날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향한 주문이기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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