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승화되어 그 사랑의 극치를 이룰 때 한마음、한몸이란 말을 사용할 수 있나보다. 이웃의 절박한 현실에 목숨이 되어주고 눈도 되어주면 세상이 바로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색깔로 채색되리라 생각했다. 마침 성체대회를 앞두고 「한마음 한몸」운동의 바람이 일어 날맹이에 옹기종기 붙어있는 자양동 달동네에도 이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세상은 어찌 보면 인간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비열한 방법으로 서로를 빼앗기 여념이 없으나 어찌 보면 한 모퉁이에서는 하느님의 뜰에서 소꿉놀이하는 평온함도 있다. 한쪽에서 행복이 상거래 같은 것으로 부여잡으려 한다면 이 모퉁이에서는 더 큰 희생과 더 큰 가난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이 바람이 번져나가야 한다.
산 일번지 사람들、남에게 못할 짓 하지 못하는 천성을 타고 나서 가난과 병고와 인간 애환을 묵묵히 안고 살며 이곳까지 떠밀려온 이들이다. 이곳에 성당이 들어서면 어떤 혜택이 있으려니 기대했는데 성당을 짓는다、장애자를 돕는다는 등 매일 뜯어갈 궁리만 하다가 이제 피와 눈까지 뽑아 간다는 얘기가 돌았던 모양이다. 대부분 노인들이고 비척이는 몸 하나로 삶에 뛰어든 이들은 늘 빼앗기며 살아왔다는 생각에 공허하다.
그런데다가 성체의 삶이 어떻고 사랑이 어떠니하며 헌혈과 장기를 기증하라고 기를 쓰는 신부 모습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공지사항과 반회합을 통해서 누누이 설명을 했건만 장기기증은 물론 헌혈한 사람이 한 사람도 나서지 않는 것이다. 다소곳이 고개들을 숙였지만 준엄한 거부의 판결을 내린 모습들 같았다.
힘없이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나뭇잎을 이리 많이 달고 저 세찬바람을 어떻게 저항하며 얼마를 버티어야 할까.
팔순의 할머니 한 분이 쫓아 나오셨다. 『신부님、이제 얼마 살지 모르는 늙은이라서 아까울 것은 없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변소 출입도 해야 하고 성당도 다녀야 하니 한 쪽 눈만 가져가시면 안되유?』 돌아가실 때 가져간다니까 그때까지 쓸 만한 것 남아있으면 다 가져가라고 하셨다.
이 허허한 가슴에 무엇이 남아 영글어 갈지 방황하던 나에게 그 할머니의 사랑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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