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썽많던 소위 모자보건법이 5월10일을 기해 그 효력이 발생하게 됐다. 한국 주교단의 강경한 요구와 가톨릭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법이 그 독소조항까지 포함해서 기어코 발효케 된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금년 2월 18일자로 발표된 주교단 사목교서는 사실상의 헛소리 문서가 되어버린 셈이고 가톨릭교회의 반대도 무능한 자들의 소용없는 짓이 되고 말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 있겠지만 정부 측에서는 일방적으로 자기가 계획한 것을 전혀 양보하지 않겠다는 또 국민의 소리를 아랑곳 없이 생각하는 태도가 있겠고 교회 측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은 지난 2월18일 주교단에서 사목교서를 발표하였을 때 가톨릭 신자들 중에는 낙태수술을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을 지지하는 자들이 많았었다. 신자들 중에 상당히 많은 자들이 이미 낙태수술의 경험을 가진 자도 있고 또 이것이 합법화되기를 원하는 자도 있다. 그래서 주교단을 지지해서 정부에 항의하기를 꺼려한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주교단에서 올바른 것을 가르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신자들에 의해 수락되고 실행되지 않을 때는 그 가르침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것은 자연적인 원칙일 것이다. 모자보건법에 관해서는 교회 자체가 인간의 욕망에 의해 패배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것을 교회의 가르침의 다른 영역에까지 확대해 본다면 참으로 교회의 장래에 대해서 비관적이 되지 않을수 없다. 교회가 아무리 올바른 것을 가르쳐도 신자들은 자기들의 이해관계와 욕망만을 따를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교회가 가르칠 의무를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는 모자보건법이 이 사회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 심히 우려하는 바이다.
5월10일 이 법이 발효되었고 다음날 11일에는 정말로 끔찍한 사건이 매스콤을 통해서 보도되었다. 무장탈영한 나성종 일병이 카빙총 한 자루로 7명을 사살하고 자신도 쏴 죽은 사실이다. 천하가 놀래고 분개했던 사건이다. 더구나 이 사건을 통해서 경찰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데는 무능하고 사소한 교통위반을 적발해서 착복하는데 유능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말지 않았는가? 나성종 일병의 사건은 한사람의 문제라기보다 국민 전체와 사회 전체의 문제이다. 그것은 바로 올바른 양심의 문제이고 인간의 생명을 존중할줄 아는 태도의 문제이다. 따라서 나성종 일병의 사건은 모자보건법의 첫시행이라 하겠다. 태아에 매쓰하는 것이나 사람을 쏘아 죽이는 것이나 양심의 입장에서 볼 때 다를바가 무엇 있겠는가? 처음 낙태를 시술한 의사치고 양심의 충격을 안받은 자 없고 태아를 처음으로 유산시킨 부모치고 태어나지 못한 아기의 암영(暗影) 때문에 고민하지 않는 부모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반복되면 양심은 무디어져서 악을 저질러도 태연해지고 심지어 악을 저지를 수있는 힘마저 생기게 되는것이다. 그런데 악에는 반드시 벌이 따르게 마련이다.
사람이 벌하지 않는 악은 천벌을 받게 된다고 한다. 이 사회가 경제적으로만 향상된다고 해서 복지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양심이 살아있고 정신이 건전하고 생명이 위협을 받지 않을때 복지국가가 되는것이다. 그런데 어떻게해서 낙태허용의 모자건법이라는 법이 제정되었을가? 여기에 관련된 자들이(법을 만든 사람이나 그것을 따르는 사람이나) 언제 나성종 일병과 같은 자의 총에 맞아 죽을런지 누가 장담하겠는가? 그들이 또 어떤 불행을 겪게 될것인지 누가 말할수 있겠는가? 세상에는 언제나 가난한 자도, 우는 자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갓난아기의 울음을 질식시키는 이 세상에 인간이 행복하게 살수 있겠는가 한번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물론 문제는 있다. 이 땅에 인구가 너무 많고 교육할 능력도 없이 자녀만 많은 가정이 너무도 많다.
인구조절 문제와 가족계획 문제는 현대에사는 교회로서는 절대로 외면할수 없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교회는 이 문제를 인위적방법으로 해결할수 없음을 잘 알고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생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정신으로 해결해야 한다. 지식을 향상하고 인격을 형성하고 사랑과 인내의 정신으로 자제하고 절제하는 정신을 키워보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구조절과 가족계획은 전인적교육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그밖의 다른 모든 방법은 인간을 행복에 보다는 불행으로 이끌고 마는것이다. 여기에서 교회는 대오각성(大悟覺省)할 필요가 있다. 과연 교회는 교육해야할 사명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모자보건법은 이 사회 전체의 정신적인 자세 문제이고 심지어는 이 사회의 존폐에 관한 문제인데 주교단에서 사목교서 한번 발표하고 그것도 신자들에 의해 사문화된 것은 강건너 불보는 격의 태도가 아닌가? 주교ㆍ성직자ㆍ수도자ㆍ평신자 모두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 깊이 인식하고 이 법을 철회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무릅쓰고 행동을 취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이 사회를 바로 잡아주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바침으로써 태아의 생명을 구원할 시기가 오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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