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강구(江口) 영덕(盈德)의 예비군 초소의 시찰을 마친 것이 거의 밤 1시 가까왔다. 우리 일행은 이왕 온 김에 백암온천으로 가서, 유하기로 하였다. 영해에서 평해까지 밤길을 지이프로 달렸다. 인적(人跡)이 끊어진 밤길은 태고의 정적속에 쌓여있었다. 바다냄새가 풍기는 바람이 상쾌하였다. 지이프차의 헤드라이트에 떠오르는 가로수가 유령같았다.
평해에 도착한 것이 거의 2시. 우리는 산협(山峽)으로 접어들었다. 겨우 지이프차가 다닐만한 길이 벼랑 중턱으로 뚫려있었다. 하나의 골짜기를 빠져나오면 다음 산모퉁이가 가로막고 괴이(怪異)한 바위가 거뭇하게 거인(巨人)처럼 서있었다 어둠속에서 밤하느를 배경으로 우뚝 솟아있는 바위나 산봉우리는 숭엄한 두려움을 느끼게 하였다.
평해에서 백암온천까지 지이프로 족히 30분이 넘어걸렸다. 도중 개울을 건넜다. 밤중에 듣는 개울 물소리는 실로 청아하였다.
온천여관(호텔이 없었다)에 들자, 일행은 목욕부터 하였다. 일행이 목욕을 마친 빈탕을 나는 혼자 차지하였다. 너른 욕탕에는 구석마다 심야(深夜)의 정적이 베어있었다. 다만 어디선지 찰찰 물이 넘치는 소리만 들렸다. 알맞게 더운 맑고 투명한 물속에 온몸은 잠그고 사지를 쭉뻗었다.
그리고 한없이 깊은 심산(深山) 골짜기의 깊은 정적속에 눈을 감았다.
죽은듯이 고요한 저편 끝머리에 일행들의 수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릴뿐이었다.
이튿날은 이외로 일찍 눈을 떴다. 밖으로 나가자 상상보다 깊은 산중이었다. 까마득하게 솟아있는 산들이 병풍처럼 두른 협곡사이에 온천장이 있었다.
하지만 말이 온천장일뿐, 초가집이 몇십채 들어앉은 촌마을이었다. 높은 산마루는 숯굽는 연기가 한오리 파랗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공기가 달았다.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로 가게되면 어디서나 공기가 달게 느껴지지만, 백암 온천장의 공기는 유별나게 향기로웠다. 시인적인 표현을 하게 되면 산삼(山蔘)내가 풍기는 것이었다. 온천여관 앞에는 개울이 있었다. 자갈들이 깨끗하여 가지고 놀고 싶었다.
물이 옥같이 맑았다. 손을 잠그고 싶은 소년같은 충돌을 금할수 없었다. 개울 건너 무슨 사무소 같은 혹은 강습소 같은 단층 기와집이 있었다. 붉고 푸른원색 펭키칠을 한 것이 사무소와 다를뿐이었다. 「다방」이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다방안에는 레지가 홀 한가운데 경대(鏡臺)를 내어놓고 화장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채 거울속을 들어다보며,
『일찍 나오셨군요.』
인사를 하였다. 동그스럼한 얼굴이 귀염상스러웠다.
『무슨 다방이지, 다방이란 간판만 붙었구나.』
『그냥 다방이에요.』
『그냥, 다방이라니?』
『그럼, 무슨 다방이 있나요.』
그녀의 대답이었다. 말하자면 다방의 이름이 다방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화장을 하다말고 주방으로 들어가 커피를 끓어내었다.
『특별, 공들여 끓인거예요.』
하지만 커피에는 흙냄새가 풍겼다. 온천장이 있는 백암면(白岩面)은 한해 한건의 도범(盜犯)도 없는곳. 그 평화스러운 사연과 녹음속에서 매미소리가 파도처럼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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