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세상은「남북가족찾기」운동 때문에 국민적 감동이 부풀대로 부풀어있다. 당사자들인 월남자들이나 남북자들의 가족은 더 말할것도 없거니와 일반국민들도 이것을 계기로 남북간의 대화의 실마리가 풀려 우리의 비원인 통일이 이루어지지나 않을까하는 기대와 열망에 들떠있다.
나로 말해도 고향을 등질 때 육순의 노모와 신부이신 형님을 내쳐두듯하고 탈출해 왔다. 풍년에 듣자니 신부형님은 그 후 곧 공산당 감옥에 끌려가 생사를 모르고 어머니는 친지의 집을 이곳저곳 헤매시다가 돌아가셨는데 그 뉘 집에서 임종을 하셨는지 목소나 지었는지 알바가 없는지라 그 망극하고 창연한 마음 이루 형언할바 없다.
남북의 유통이 이렇듯 절실한 나면서도 오늘의 김일성집단의 호응에 기쁨과 기대보다 솔직히 말해 불안과 의구가 앞서는 것은 웬일일까?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유물론적 공산주의자들에게 향한 인간불신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나에게는 이런 체험이 있다. 연전 아직도 공비가 출몰할 시절 지리산지구에 갔다가 함양전투경찰대 사령부에선가 귀순한 여공비를 만난 적이 있다. 산에서는 선전서기 노릇을 하였다는 그 때 갓 스물이나 될까말까 한 앳띤 소녀였다. 함께 간 일행이
『산생활은 어떻던가?』
『왜 산을 버리고 내려왔나』
하며 연달아 물었으나 그녀는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힌채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못하였다. 그래서 내가
『산에서도 그렇게 부끄러워 했나?』
하고 말했더니 그제사 그녀는『산에서야 어디 부끄러움이 있나요!』라고 아픔에 찼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목소리와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즉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은 양심이 잠자는 것이고 인간성의 마비를 뜻하는 것이요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양심의 눈뜸이고 인간성의 회복을 뜻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녀를 통해 확연하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북괴호응이 저 소녀의 귀순처럼 인간 양심의 회복에서 이루어진 것일까? 동족상잔을 일으킨 바로 장본인인 김일성집단이 대오일번하여 민족양심에 돌아온 소이연일까? 여기에는 누구나 부정적인 대답을 가질 수 밖에 없고 오직 그들이 국제적 정치기류에 편승하여 자기들의 고립을 피하고 자기들의 이념과 그 침략의지를 확대하기 위한 하나의 책략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럴진대 오늘의 우리들의 이 부풀고 들뜬 희망과 기대와 감격은 자칫 잘못하면 북괴의 획책하는 바 공산주의적 무혈혁명이나 그 침해에 말려들어갈 위험이 짙다 하겠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때일수록 견고한 반공이념을 가진 우리 기독교신자들 나아가서는 전체 종교인들이 단합하여 저러한 감상적 풍조에 제동적 구실을 하여야 된다고 생각하며 이에 대처할 우리의 확고한 자세의 천명이 있기를 요청하는 바이다. 왜냐하며 우리 국민 중에서 원칙을 지닌 민주주의자들이란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기독신자 특정부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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