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2일 대한 적십자사 최두선 총재는 세계 적십자운동의 인도정신에 따라 철의 장막으로 분단된 이북과의 가족찾기 운동을 제의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이산가족들은 물론 국내외의 모든 매스콤이 다투어 그 제의를 찬양ㆍ지지하였다.
그 이유로서 한결같이 정치 이전의 인도문제를 들고 나왔고 오랜 정치적 긴장의 해방과 국토 통일의 실마리가 되기를 바랐다.
우리국민은 물론이거니와 온 세계가 그 반응에 귀를 기울였다. 세계의 분단국가 중에서도 가장 강한 철의 장막으로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동서 진영의 사상이 가장 예리하게 대결하고 있는 분계선이기 때문이다. UN의 세계평화가 그 운명을 걸어온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14일 기대했던것 이상의 놀라운 반응이 나타났다. 북한 적십자회가 최 총재의 제의를 수락할뿐 아니라 그 이상의 구체적 제의를 해왔다. 20일 판문점에서 만나 공식적인 수락문서를 수교하고 그에 관한 1차적인 접촉을 갖자는 것이다. 남북으로 이산된 가족ㆍ친척뿐 아니라 친우들 간에도 서로 서신을 교환하고 자유로이 왕래하고 방문할수 있게 하자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와 같은 놀라운 반응이 매스콤을 타고 울려오자 오랜체념으로 얼어붙었던 이산가족들의 가슴에는 다시 불길이 일어 울먹이며 환성을 올렸고 세계의입은 또 한번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반신반의하는 무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공산주의의 상부적인 기만전술과 정치적 책략을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 인도정신은 최저한의 인류애라고 할수있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뛰어난 정략이나 현대의 정예무기로도 제거하지 못한 철의 장막을 사랑으로 뚫어보자는 것이다. 그 시도가 대한 적십자사에서 제의되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비단 분단국가의 통합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항구한 결합이 사랑을 떠나 이루어질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있다. 그러나 정치사회의 결합에는 서로의 정치적 이익이 사랑에 앞선 것이 인류역사의 현실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물론 세계 적십자사는 정치단체가 아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인도주의의 실천을 위한 박애단체이다. 따라서 그들에겐 직접적인 정치기능이 없다. 그보다도 이번에 이룩된 남북 적십자사간의 가족찾기 운동을 위한 접촉의 성패는 바로 어떻게 정치성을 배제할수 있느냐는데 달려있다고 할것이다. 이 말은 결코 정치적 이익의 배제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사회는 그 정치적 이익을 배제할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어느사회에서나 그 공동의 이익과 공동의 선은 언제나 생독적인 인간의 권리ㆍ의무를 존중하는데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인간의 기본인권을 구가한 근세 이래의 세계역사 속에서도 정치인들의 스스로의 이익과 정치적 편의 때문에 인권을 유린한 예가 수없이 되풀이되어 왔다. 자선단체나 종교까지도 정치에 이용된 예가 허다히 있었다. 그래서 이번 적십자사의 이산가족찾기 운동에 있어서도 정치인들의 농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공산주의와 인도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주지된 사실이다. 따라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크게 제약되고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신앙의 자유마저 인정되지 않는다. 더구나 교조주의를 택하고 있는 이북공산주의 집단에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그 사회의 적십자회가 회신한 가족, 친척, 친우들간의 서신교환, 자유왕래, 상호방문이란 인도적 호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냐는 것이다. 공산주의는 종교단체마저 위장한 정치단체로 본다. 그렇다면 대한 적십자사의 제의를 보는 눈이나 이북적십자회의 생리자체도 그 예외가 될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쪽에서 성급하게 처음부터 정치협상으로 이끌자는 것은 아니나 충분한 대응자세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950년 6월 10일에 북괴는 방송을 통해 이북에 억류되어 있던 조만식 선생을 이쪽에서 검거한 남로당 괴수 김삼용, 이설하 등과 맞바꾸자는 제의를 해온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교섭이 성숙되어가는 중에 15일후인 25일에 뜻하지 못했던 남침을 감행했던 것이다. 이번 적십자사의 접촉이 또한 그럴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날의 산 교훈으로서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근래 동서진영이 급진적으로 접근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우리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숙원인 국토통일의 계기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가족찾기 운동이 일단 정치성을 떠난 인간교류 속에서 우선 적어도 자유로운 서신왕래 정도의 결실을 거두어야 하겠고 이에 따르는 정치적 해방과 국제정세의 변천을 감안하여 강대국에 의한 강제로 분단된 국토와 겨례를 되찾고 하루속히 이산된 가족, 친척, 친지를 다시 만날 수 있게 하여야 하겠다.
오늘의 정치인은 내일의 정세를 투시하는 예리한 눈과 치밀한 계획과 뛰어난 정치적 역량을 가져야하고 일반국민은 다가올 새로운 정세에 대응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데 각성이 있어야 하겠다. 공산주의를 배격하는 확고한 정신이 대중화되어야 하고 자손만대에 물려줄 국가대계가 스스로에 의해 좌우되는 중대시기에 놓여있음을 크게 깨달아야 하고 본의아니게 분단되어 이북에서 갖은 고생을 하고있는 같은 겨레에 대한 사랑을 깨우쳐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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