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은 한 몸의 거처도 마련키 어려운 살림에서 사십여 년 간 막노동하여 담도 대문도 없지만 방 두 칸을 마련하였다. 회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앞으로도 그동안의 삶의 여운으로 남은 여생을 다스리리라 결심하며 성실히 살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신들린 사람처럼 불을 질러 대는 것이다. 체념 속에 숨어있던 분노가 다스리던 가슴에서 빠져나왔다. 집에 있는 가재도구를 끌어내어 불을 지르곤 하였다. 그리고 하늘의 푸르름에 비웃는 듯 한껏 웃어제키고는 그 후련함에 춤을 추는 것이었다. 산 일 번지는 소방 도로도 없었다. 불이 나면 삽시간에 불바다가 될 텐데 자꾸만 마당과 남의 집 모퉁이에 불을 질러대니 보초를 서던 동네사람들이 이 신부를 불러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타다 남은 불길위에 쥐포 몇 마리 구워먹으며 『기도원에 보내야 되여』 『아녀, 순덕이네 굿 한번이면 딱 소리 날껀디』라며 신부의 무능함을 책하고 있었다.
마음을 진정시켜놓고 얘기를 시켰다. 그분은 날 강도에게 돈 삼만 원을 강탈당했다고 했다. 망령이 났는지 하루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심한 갈증을 느꼈다고 했다. 성탄 때 교회나 성당에서 번쩍거리는 그 번쩍 불이 있는 술집에 들어가 생전 마시지 않던 맥주와 안주를 시키고 아가씨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누었는데 삼만 원을 빼앗겼다는 것이다.
뙤약볕에서 몇 일의 품값을 몇 분에 날려 보내고 정신 착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젠 기운이 달린다더니 삼만 원의 유감이 가슴에 맺혀와 그를 풀기위해 불을 질러댔던 모양이다.
그 분은 자기의 소리와 몸짓에 취해 웃다가 울곤 했다. 절규와 발광의 차원을 벗어난 그 어떤 정한(情恨)의 몸부림이었다. 자꾸 울고 웃어 목이 쉰 그분을 눕히고 거친 시멘트 바닥 같은 손을 쓰다듬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기 여념이 없었다. 그 분은 잠결에도 『그 돈이 어떤 돈인데 … 도둑년놈들』이란 말을 반복했다. 삶이 지쳐서가 아니라. 내내 잘 버티던 그 술집 앞을 지나치지 못한 자신에 대한 화풀이였다. 인간욕구의 속절없음을 알고 웃어제키고 안으로는 성실했던 가슴을 한 조각씩 뜯어내며 울고 있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