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처: 나의 십자가(十)는 사라지다.
기적처럼 콜롬비아에 사는 중학교 친구를 만났다. 귀국하여 친정 엄마와 나란히 걷고 있던 길에서 우연히 만났던 것이다.
우리는 신비처럼 옛 우정을 더듬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를 가르치셨던 담임선생님께도 전화를 드렸다. 우리 세 사람은 이 곳 저 곳을 드라이브하고 맛있는 음식도 들었다. 향기 짙은 커피를 앞에 두고 오랜만에 스승과 제자들이 담소를 나눴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점에 대한 이야기도하고 헤어졌다.
그 이튿날은 대학친구들이 나를 찾아왔다.
『정애야 너의 부부가 콩나물과 장미사이라 하더라도 이혼만은 하지 말아라!』고 말하던 결혼 10년 만에 이혼한 친구도 방문했다. 그 친구 앞에서 내 고통은 무의미 했지만 그저 만남으로 족했다.
어떤 날은 외박도 했다. 그럴 때는 대모님을 찾았다. 50년을 넘도록 혼자사신 분이라 나와도 잘 어울려 주셨다. 밤을 새워 이야기를 했다. 하늘의 별만큼이나 무수한 생각 생각들 …
아침이 되면 대모님을 따라 병원 중환자실로 병문안을 갔다. 수술 도중 마취가 깨지 않아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영혼 앞에서 나는 생명의 고귀함을 배웠다.
한 가닥의 양심은 남아 있었던 것일까? 일요일이라 하느님을 잠깐 뵈러 갔다. 처녀시절 다녔던 동산동 성당으로 … 그런데 하필 내 결혼식 한 달 전에 사제서품을 받으신 안호석 (안드레아) 신부님과 부딪치고 말았다.
청소년들을 위한 특별강론을 하시기 위해 광주대교구에서 일부러 오신 거란다. 그래서인지 「고우니」를 먼저 찾으셨다. 그리고 애기엄마가 애기를 데리고 다니라며 충고까지 해주었다. 그 말씀으로 나는 「어머니의 자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제14처: 무덤에 고이 묻히다. 별거생활 80일이 되던 날 밤이었다.
느닷없이 헛소리를 하는 딸에게 연고를 발라주며 24년을 불치병으로 정신을 잃고 사는 내 언니를 떠올렸다.
하찮은 어른들의 잘못으로 죄 없는 아셀라를 병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한 때였다. 그래서 보고 싶은 아빠를 만나게 해주려고 네 살 박이 손을 꼭 잡고 서울행 입석열차를 탔다.
제15처: 죽음에서 부활하다.
예수여!
당신은 사흘 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셨는데, 어찌하여 이 죄인을 하루만에 무덤에서 구원 하셨나이까!
도미니꼬는 갑자기 상경한 나와 딸을 보고 아이처럼 기뻐하며 딸기를 먹음직스럽게 대접했다. 나는 낯 설은 손님처럼 다소곳이 있는데 철부지 딸은 얼른 딸기하나를 집어든다.
주 하는님께서 노예를 감동시켰네. 나는 죽음에서 부활되었네!
남자와 여자를 부부로 묶었네!
『나는 주가 살아계심을 아네!』
능욕ㆍ무거운 십자가ㆍ수난ㆍ모욕ㆍ천대ㆍ고욕ㆍ고통ㆍ상처ㆍ초와 쓸개ㆍ세 번째 쓰러짐ㆍ죽음ㆍ돌무덤 속에서 나는 예수와 만난 사람이 되었네.
지금까지 「어머니생각」을 애독해주신 독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다음호부터는 경북 상주의 이희순씨가 수기 「영원히 머무오리다」가 연재됩니다. 변함없는 성원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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