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를 스피드 시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후기 산업사회의 대량생산처제가 모든 생산과정을 신속화 하는 모든 것은 불가피한 일일런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보다 신속하게 행동하고 판단하려고 든다. 그 결과 신속화(迅速化)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반성이나 자기비판을 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하게 하는 비운(悲運)을 가져다주었다.
최근에는 농작물에도 속성재배가 유행이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사람들은 우선 당장 속성으로 다수확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한다. 채소, 과일의 생산은 이제는 계절과는 상관없이 아무 때고 가능해졌다. 수박ㆍ참외ㆍ딸기ㆍ토마토는 제철이 아닌 때에 일찍 생산출하 되어야 돈을 벌 수 있다. 돼지ㆍ닭 같은 축산물도 속성으로 양육되고 물고기도 가두리 양식을 하여 빨리 많이 길러야 수지를 맞춘다.
온갖 종류의 주방기구나 생활도구도 사용하기에 점점 수월해지고 그 효능이 빨라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빨리 빨리라는 말에 아주 익숙해지고, 빨리 작동하는 것일수록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교육조차도 속성작업에서 예외가 아니다. 조기(早期)교육은 창작예술분야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교육과정에서 요구되고 있다. 사람이 동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람도 닭을 기르듯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자기 나라 글도 배우기에 이른 어린이들에게 영어공부를 시키기도 한다. 지구촌에서 국제적으로 활동하려면 외국어 조기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성체도 제일먼저 영하고 싶고, 판공성사도 새치기 하면서까지 제일먼저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100미터를 9초보다는 8초에 뛰는 것이 더욱 사람다운 것일까? 무슨 일이든지 빨리 하기만 하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교통사고율이 제일 높은 나라라는 불명예를 얻게 된지도 여러 해가 되었다. 특히 교통사고 사망율은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높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마치 자동차경주 선수들이 시합을 하듯이 운전하고 있다. 운전자들은 교통신호가 빨간 불에서 노란불로 바뀌자말자 숨 쉴 여유도 없이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결사적으로 돌진해 나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도 단거리 경주선수처럼 1초의 여유도 없이 돌진한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작동이 고장나, 엘리베이터 차체가 도착하기 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아이고 어른이고 간에 앞을 살펴보지도 않고 뛰어들어 그만 추락해서 죽고만 사고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동차를 직접 운전할 때나 버스나 지하전철 같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반드시 앞과 뒤와 옆을 살펴보아야 하건만, 그러다가 어물거리면 욕먹기 십상이다. 그래서 교통전쟁이라는 말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그러므로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전전긍긍하면서 산다. 집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사람들은 아이고 어른이고 간에 하루에도 몇 번씩 집에 안부전화를 한다. 그래야만 마음이 여리고 고운 주부들은 안심을 하고 살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학습평가방식으로 사지선다형(四肢選多型, multiple choice)이라는 시험방식이 유행하고 있다. 이 시험제도는 원래 학습능력이 천차만별인 미국 군인들을 상대로 단기군사교육을 실시한 후 다량으로 심사하기 위해 고안해낸 것인데, 엉뚱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온갖 종류의 시험제도에다 사용되고 있다. 이 시험방식은 채점자의 주관을 배제하고 채점자체의 공정성을 도모하는 데는 그런대로 일리가 있지만 학습평가 방식으로는 아주 무책임하고, 비교육적인 평가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지선다형이 한국에서 그토록 유행하는 실제적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채점자가 채점을 빨리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도대체 왜 채점을 빨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이유는 교육의 목적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이것은 퇴근길에 자가운전자가 전혀 바쁜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자동차경주를 하듯이 남에게 뒤지면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차선을 급히 변경해가면서 결사적으로 차를 몰고 가는 것과 같은 심리다. 최소한의 양식을 갖춘 교사가 참으로 학생들의 학습결과를 바르게 평가하고 싶으면 이 사지선다형시험방식을 택할 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 반교육적인 평가방식이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온갖 종류의 시험에서 자행(姿行)되고 있다. 더군다나 사람의 목숨과 상관이 있는 운전면허시험에도, 의사 자격시험에도, 약사 자격시험에도, 약사 자격시험에도 빨리 채점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시행되고 있다.
필자가 아는 어떤 젊은 총명한 교수는 미국에서 십여 년 운전경험을 가졌지만,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4년 만에 다시 자동차운전면허시험을 치루게 되었다. 그분은 필기시험에 한번 낙방을 하고, 실기시험에는 세 번이나 낙방을 했다고 한다. 필자도 몇 년 전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졌다. 그때 필자는 간신히 시험에 통과는 했지만 쓰디쓴 웃음을 웃었다. 그때 나와 같이 필기시험을 치루는 사람들 중에는 5분 만에 신속하게 답안지를 제출하는 사람도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은 시험시간이 반도 지나지 않아서 쫓기듯 답안을 메꾸고 밖으로 나갔고 끝까지 남아서 시험을 치룬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운전시험문제집이 있는데, 그것을 무조건 따로 단순하게 외우면 되고, 이것저것 복잡하게 신중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동차운전교습소의 합격 점수만 맞으면 된다고 공언하는 것을 나도 들었다. 아무튼 나는 운전면허 시험제도가 우리나라의 일반교육제도의 축도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공부와 신앙생활은 물론이고 사회생활도 숨 쉴 여유를 가지면서 느긋하게 찬찬히 행하는 것이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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